차라리 아내도 바꾸겠다고 하지…‘혁신하는 척’ 얼마나 버틸까

한겨레21 2023. 10. 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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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내도 바꾸겠다"고 했다면 또 모르겠다.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발탁된 인요한 박사는 첫 일성으로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던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30년 전 발언을 차용했다.

이런 감각의 소유자를 다른 기구도 아닌 당 혁신 기구의 수장으로 앉힌 국민의힘은 어느 시대를 사는 걸까.

'혁신하는 척'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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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정치의 품격]‘혁신하는 척’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웃기고 슬픈 국민의힘
2023년 10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김기현 대표를 만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공동취재사진

차라리 “아내도 바꾸겠다”고 했다면 또 모르겠다. 참신하지도 놀랍지도 않은 철 지난 레토릭을 들으니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든다.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발탁된 인요한 박사는 첫 일성으로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던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30년 전 발언을 차용했다. 그 시절 삼성그룹의 임원이며 간부는 모조리 남자였다. 당시에도 그 말이 구리다 여긴 ‘신세대’가 ‘쉰세대’(50대)가 되었건만, 어쩌자고 그 긴 세월과 세상의 변화를 무시하고 가부장을 주체로 혁신을 논하나. 이런 감각의 소유자를 다른 기구도 아닌 당 혁신 기구의 수장으로 앉힌 국민의힘은 어느 시대를 사는 걸까. 혹은 얼마나 급하게 ‘모셔왔’길래 말 고를 틈조차 주지 못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인요한 위원장은 권한도 제대로 가늠 못한 상태에서 언론 앞에 섰다. 인 위원장 탓은 아니다. 그는 우리 정치에 대한 호의와 선의로 충만해 보인다. 위원 구성도 어려울 텐데 덜컥 자리를 맡은 것만 봐도 충분히 ‘용자’이다. 그가 아니라, 그를 무대에 올려 관심을 돌리려 한 국민의힘이 참 못났다. ‘혁신하는 척’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웃기고도 슬프다. 후보도 내지 말았어야 할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윤석열 대통령이 무리하게 내리꽂은 후보를 세웠다가 심판받아놓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굴었다.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하란 대통령 말씀이 떨어지자 임명직 당직자들만 전원 사퇴했다. 쇄신하겠다면서 과거 수해 복구 현장에서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던 의원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앉히고, ‘또 친윤 또 영남’ 인사를 2024년 총선 준비의 요직인 당 사무총장에 앉혔다. 당운을 건 선거에서 패한 지도부가 대표 사퇴 없이, 흔한 사과와 반성조차 없이 ‘라벨 갈이’ 하듯 2기 체제를 꾸리는 건 처음 본다.

신인규 전 부대변인은 보다 못해 탈당하며 “반성과 성찰의 입구에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국민의힘의 처지를 설명했다. 이 모든 ‘웃픈 상황’의 연원은 하나다. 자신이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느라 그렇다. 덩달아 갈지자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은 늘 옳다”고 하고는 돌아서서 헌법재판소 소장에 재판관 임기가 11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학 동기를 지명했다. 이젠 이념 말고 민생이라더니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도 모자라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까지 하게 뒀다. 소통 부족을 반성한다면서 야당 대표와의 만남도, 기자회견 일정도 잡지 않는다. 그저 참모들을 앞에 놓고 궤변과도 같은 ‘소통론’을 설파할 뿐이다. “저도 더 소통하려고 합니다마는, 소통만 해갖고 되는 게 아니라 추진하면서 소통을 해야 됩니다”라니. 소통을 무슨 안내나 알림 정도로 여기나보다.

온갖 ‘아닌 척’ ‘하는 척’ ‘되는 척’ 사이에서 숨죽이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큰 지각변동을 앞두고 있다. 개혁 보수를 내건 이들의 이탈이 시작이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대통령은 오르지 않는 지지율을 두고 당 탓을 할 것이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 중심의 신당 창당설에 손사래를 쳤으나, 그가 대선 때부터 별도 사무실까지 차려놓고 지근거리에서 대통령과 그리 깊이 교감한 이유에 다들 주목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한 게 그 당의 유구한 전통이지만, 제 살길 먼저 찾는 것 또한 ‘정통 기회주의자’들의 필살기이다. ‘미시감’이 드는 계절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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