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심장마비로 사망...8월 둔황서 손흔든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중 당국은 퇴임후 ‘리커창 지우기’
리커창(68) 전 중국 총리가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중국 CCTV·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리커창은 지난 26일 심장마비가 왔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2013년 3월 원자바오(溫家寶)로부터 중국 국무원 총리직을 넘겨받은 리커창(李克强)은 올해 3월 퇴임까지 10년간 중국의 이인자 자리를 지켰다. 혁명 원로 자제인 태자당 출신으로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과 달리 엘리트 코스를 밟아 권력의 정점에 섰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0년간 중단됐던 대입시험이 재개되자 독학으로 베이징대 법학과에 들어갔고, 중국 최고 지도부에는 흔치 않았던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지도부로 활동한 뒤 같은 공청단인 후진타오 전 주석의 지원을 받으며 강력한 주석 후보로 부상했다가 최종적으로 총리에 올랐다.
임기 초기에는 시진핑·리커창 투톱 체제를 의미하는 ‘시리쭈허(習李組合)’라는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며 실세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시진핑이 정치적 라이벌이던 리커창에게 실권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총리의 영역인 경제 분야에서도 정책 도입에 난항을 겪었다. 2016년 당 기관지 인민일보에는 ‘익명의 권위 인사’ 이름으로 리커창의 낙관적 거시경제관을 비판한 글이 게재됐다. 시진핑 2기 출범 이후에는 거시경제, 금융 관련 권한이 시진핑의 최측근인 류허 부총리에게 넘어갔다.
경제통인 리커창은 ‘성장’을 중시했지만, ‘분배’를 우선시한 시진핑은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살기)’를 추진했다. 리커창은 국영기업 규모 감축과 시장규칙을 준수할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시진핑은 국영기업의 덩치를 불리고 당이 기업 경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리커창이 진흙이 묻은 장화를 신고 수해 현장을 누비는 모습 등이 관영 매체에 나오지 않았고, 그가 덩샤오핑 동상 앞에서 개혁·개방을 칭송한 장면은 당국의 검열 대상이 됐다는 중화권 매체의 보도도 나왔다.
그럼에도 리커창은 합리적 개혁가로서 과도기의 중국 경제를 조용히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총생산(GDP) 등 지표는 조작이 가능해 믿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주로 참고하는 ‘철도 물동량, 전력 소비량, 은행 신규 대출’ 3가지 지표가 ‘커창지수’로 불리며 외부에서 중국 경제를 예측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2020년 외신 기자회견에선 “중국인 6억 명의 월 수입이 1000위안(약 19만 원)에 불과하다”고 말해 빈곤 해결을 성과로 내세운 시진핑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리커창은 코로나 봉쇄 시국에는 중국 경제 회생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다. 작년 3월 말 상하이 봉쇄로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자 그해 5월 31개 성·시 간부를 비롯해 10만명이 참석한 ‘전국 경제 지표 안정 화상 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6월까지 모든 조치를 취해 경제 회복을 쟁취하라. 경제는 경제만이 아닌 중대한 정치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무원 장관급 인사들을 ‘감찰조’로 지방정부에 내려 보내 경제를 직접 챙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올해 3월 양회(兩會) 업무보고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자 중국에서는 ‘리커창 지우기’가 시작됐다. 리커창이 퇴임하면서 정부 부처를 돌며 따뜻한 환대와 작별 인사를 받는 영상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8월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에서다. X(옛 트위터)에 올라온 영상에서 리커창은 웃는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고, 그를 본 수백 명의 관광객은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며 반갑게 인사했다. 중국 매체들은 리커창의 둔황 방문을 보도하지 않았고,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도 관련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리커창은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 지한파다. 한·중 수교 2년 후인 1994년 리커창은 공청단 제1서기로 한국을 방문했다. 첫 방한 이후 12년 만인 2006년, 리커창은 중국 랴오닝성 당서기 재임 시 다시 방한했다. 2011년에는 중국 국무원 부총리로서 남·북한을 잇달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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