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미공개작 담은 '노란문'…그시절 영화광들이 전한 여운 [시네마 프리뷰]
27일 첫 공개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거장' 봉준호 감독의 미공개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은 1994년 단편 영화 '백색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첫 작품은 1992년 겨울 영화 동아리 '노란문'에서 딱 한번 상영했던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다. '노란문'은 학생운동의 쇠퇴 이후 최종태 감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화 동아리로, 봉준호 감독이 당시 '영화광'들과 영화에 대한 열정을 나눴던 모임이다. '노란문: 시네필 다이어리'는 20대 청년 봉준호의 그 시절로 타임슬립하면서도, 봉준호와 함께 했던 영화광들의 이야기로 짙은 여운을 전한다.
27일 처음 공개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이하 '노란문')는 19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인 '노란문 영화 연구소' 회원들이 30년 만에 다시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1970년대 평화시장 소녀 미싱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2022)로 제9회 들꽃영화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이혁래 감독의 신작이다.
'노란문'은 당초 봉준호 감독의 이제껏 공개된 적이 없던 첫 영화를 일부 공개한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첫 작품인 '룩킹 포 파라다이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노란문' 회원들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당시엔 세계적 감독이 아니었던, 그저 주변의 친근한 동아리 회원 중 한명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첫 작품에 대해 떠올린 회원들의 기억은 전부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뜻밖의 웃음을 안긴다.
이 작품에서의 봉준호 감독의 포지션도 흥미롭다. '노란문'은 봉준호 감독과 그의 첫 영화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의 삶의 일부였던 '노란문', 그리고 당시를 함께 했던 회원들에 대한 이야기다. 30년 만에 회상 통화로 회원들과 재회한 봉준호 감독의 얼굴은 생경하면서도 편안하다. "형" "누나"를 친근하게 부르는 '동생' 봉준호 감독의 일상적인 대화는 매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다.
봉준호 감독과 '노란문' 회원들은 그 시절 자신들이 모여 활동한 이유에 대해서도 곱씹는다. 회원들은 자신들을 "사회부적응자"라고 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가 하면 "학생운동이 끝난 후 에너지는 넘치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다"는 등 저마다의 이유를 든다. 봉준호 감독은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때 마음껏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곳"이라고 회상한다.
영화를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갈증은 '기표'와 '기의' 등 어려운 영화의 개념에 대해 파고들게 했고, 당시 쉽게 볼 수 없었던 영화 서적이나 명작들을 담아낸 비디오 테이프들을 구하게 했다. 봉준호 감독은 비디오 라이브러리 관리를 잘 해냈을 뿐만 아니라 비디오 테이프에 제목을 적어 붙이는 라벨링도 탁월하게 잘해냈다고. 그는 "덕후의 원동력은 집착"이라며 "자료에 대한 갈증이 많아서 집착했다"고 웃었다. 특히 봉 감독의 쇼트 분석과 '대부' 등을 보고 그린 스토리보드 자료도 공개됐는데, 이는 1993년 3월 발행된 '노란문' 학술지에 남아있어 공개가 가능했다.
이런 영화에 대한 열의는 봉준호 감독을 '룩킹 포 파라다이스' 연출에 이르게 했다. 이는 '노란문' 송년회에서 15~20여 명의 멤버들에 공개됐는데, 봉 감독은 당시에 대해 "괜히 혼자 긴장해서 귀밑까지 빨개졌다"며 "내가 애니메이션을 포기하고 실사를 하게 된 계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에도 당시 봉 감독의 비범함을 알아봤던 회원, 고릴라 인형을 든 채 밤을 새워 촬영하다 어머니의 걱정 어린 소리를 들었던 봉 감독의 고백 등이 이어지며 흥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대중들이 여전히 더 궁금해하는 봉준호 감독에 대한 접근도 흥미롭다. 이혁래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에 봉준호 감독을 출연시키기 위해 그가 내걸었던 조건을 따라야 했다고 했다. 봉준호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 '노란문' 멤버들 중 한 명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노란문'을 이뤘던 회원 중 한 명으로 등장하지만 그 접근법을 통해 새로운 면모도 드러난다. 또한 영화를 너무나 찍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모습까지, 인간적인 면들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노란문'은 거장 봉준호의 첫 영화를 둘러싼 회원들의 엇갈린 기억을 시작점으로 삼으면서도, 당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열의를 나눴던 청춘의 낭만과 그 시절 향수로도 확장된다. 회원들 중 일부는 영화계 종사자들도 있지만, 영화와는 전혀 관련 없는 각자 다른 직업을 갖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한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노란문'을 추억했고, "그 놀이로 즐거웠다"거나 "그때만큼 열심히 열정적으로 영화에 미쳐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돌이켰다.
'노란문' 회원들의 인터뷰는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 가슴에 지녔던, 애정을 쏟았던 대상에 대해서도 곱씹어보게 하는 여운도 남긴다. 연출자이자 당시 '노란문' 멤버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이혁래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혼란스러웠던 시대였지만 같이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던 게 제게도 행운이었다"며 "혼란 속에서도 접점이 있는 사람들과의 가치 있는 만남, 관객들도 그런 작지만 행복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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