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영국, ‘변신’ 폴란드… 펼쳐서 세계 속으로![북리뷰]
데이비드 댐로쉬 지음│서민아 옮김│RHK
상상만으로 ‘세계 일주 책’ 펴낸
19세기 작가 쥘 베른 모델 삼아
작가 80명·문학작품 80개 통해
16개 도시의 역사·사회상 탐구
내가 원하는 도시 어딜 펼쳐도
작가를 ‘분신’ 삼아 여행 가능
평소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내도 좋고, 가고 싶었던 도시를 골라도 좋겠다. 영국 런던에서 출발하는 ‘세계 일주’지만, 맨 뒤부터 열어봐도 괜찮다. 이 여행은 어차피 런던으로 돌아와 마무리되니까. 시작과 끝. 즉, 일주 순서는 각자 정하면 된다. 하버드대 세계문학연구소장으로 비교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도서관이라는 우주에 모인 우리를, 문학이라는 비행기에 태워, 전 세계로 보낸다. 그러니까,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쥘 베른(1828∼1905)이다. 평생 유럽을 떠난 적 없으나 필리어스 포그라는 분신(分身)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한 프랑스 소설가 말이다. 자, 분신은 누구로 할 텐가. 버지니아 울프(런던)? 마르셀 프루스트(파리)? 제임스 볼드윈(뉴욕)?
책은 80명의 작가가 쓴 80권의 책으로 16개 도시를 읽어낸다. 베른의 발상을 ‘문학적 모델’로 가져온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도쿄, 시카고, 네덜란드 등 예정된 강연회와 학회가 연달아 취소되고, 격리와 함께 몸과 마음의 무너짐을 겪으며 포그를 떠올린다. 세계지도를 들고 열기구에 오르던 그처럼 자신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16주 동안 온라인에서 책으로 도시를 ‘여행’할 동지들을 모았고, 매주 한 도시, 다섯 권의 책으로 세계 곳곳을 탐험한다. 그때, 그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작가는 왜, 그런 소설을 썼는가. 그렇게 이 ‘낭만적이고 지적인’ 책이 탄생했다.
도시와 작품 선정엔 저명한 비교문학계 석학인 저자의 연구와 취향, 시선이 다양하게 반영됐다. 책은 현대 도시의 시초인 런던에서 시작해 작가들의 낙원 파리, 이민자들의 메트로폴리탄 뉴욕, 아우슈비츠의 상흔이 짙은 크라쿠프를 거쳐 아프리카, 상하이, 도쿄 등 대륙을 넘나들며 ‘문학의 세계’를 자유롭게 일주한다. 그 속에서 울프와 프루스트를 비롯해 찰스 디킨스, 아서 코난 도일,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란츠 카프카, 올가 토카르추크, 오르한 파묵, 살만 루슈디, 마거릿 애트우드 등 동서양을 넘어 ‘영원한’ 고전의 주인들과 ‘지금’ 가장 주목받는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80명의 ‘분신’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책이 인용한 철학자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 서문처럼 “귀를 기울이시오, 그러면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오”하고 속삭이며 말이다.
즐거움만 준다 해도 책은 소임을 다한 것이고, 문학은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 ‘여행’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건, 그 이상이며, 그것이 이 책의 존재 의의다. 저자가 안내하는 도시들은 위대한 작품을 남긴 지역이고,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도시마다 다섯 명의 작가를 소환한 저자는 오로지 ‘문학’이라는 예술로서 사회, 문화, 역사적 주제들을 연결 짓는다. 예컨대, 책은 런던 편에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언제 썼는지 상기시킨다. 그는 영국 제국주의적 팽창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글을 썼지만, 소설 속 왓슨은 런던을 이미 해가 저문 제국으로 묘사하며 풍자한다. 저자는 그러한 왓슨이 의사를 그만두고 작가로 새 출발하는 모습에서 세계와 삶의 혼돈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쓰는 자’의 의무와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전염병이 촉발시킨 저자의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이며, 왜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런던 편의 또 다른 작가는 평생 런던에서만 살았던 울프. 저자는 1923년 어느 날 하루 동안 런던 상류층 거주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댈러웨이 부인’을 가져온다. 이 소설에서 울프는 내내 고고학자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것이 1차대전으로 이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이, 런던을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어낸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는 카프카와 토카르추크가 기다린다. 저자는 카프카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아우슈비츠 이후 유럽의 문화, 정치적 경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진지하게 자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폴란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여섯 명이나 배출한 나라이기도 한데, 저자는 가장 최근인 2019년 수상자 토카르추크가 쓴, 쉴새 없이 여행하는 서술자의 이야기인 ‘방랑자들’을 소개한다. 천일야화의 도시 이스탄불, 살만 루슈디의 나라 인도를 지나,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루쉰과 모옌을 만나고, 도쿄에서 저자가 “일본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기이한 작가”라고 명명한 미시마 유키오까지 접선하고 나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이라는 공통언어의 힘에 탄복하면서도, 그 소통의 한 자락에 끼지 못한 아쉬움도 든다. 80권의 세계 일주에 우리의 도시는 없다.
문학과 도시를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하는 책은, 80번째 책과 함께 여정을 마친다. 20세기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자 지금까지 1억5000만 부가 팔린,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어둠의 심연을 향해 결연히 떠나는 등장 인물들의 뒷모습에서, 책은 우리의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방향키를 문학을 통해 쥐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혼란의 시대가 올까 불안해하는 프로도에게 간달프가 해 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시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뿐이야.” 684쪽, 3만5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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