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그랬다
[세상읽기]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감사받으러 나온 이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 그해 가을 국정감사에서도 그랬다. 차이는 있다. 그때 정부 관계자들은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을 간간이 했고, 때로 말문이 막히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버젓이 생중계되는 국정감사장에서, 곧 드러날 거짓말을 당당히 하며 앞뒤가 안 맞는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고 나서 대통령이 ‘국민은 무조건 옳다’, ‘민생을 챙기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던 대통령이, 드디어 여론에 반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해 가을에도 그랬다. 2016년 여름부터 소위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가 이어졌지만, 대통령은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킬 것’(2016년 9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다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던 10월 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차이는 있다. 2016년 그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고개 숙였지만, 지금 이 대통령은 그마저도 간접화법으로 전달한다.
요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소위 ‘보수언론’의 현 정부에 대한 논조가 날카로워졌다. 그때도 그랬다. 2016년 ‘최순실 게이트’를 수면 위로 올린 첫 보도는 ‘티브이(TV)조선’의 작품이었다. 그때 그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집권 뒤에는 그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감싸느라 최선을 다했던 그 언론들이, 값싼 반성문 한장 쓰지 않고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 정권에 준엄한 경고를 날리던 모습이 지금의 양태와 겹쳐진다.
그때도 지금도 집권당인 그 당에서는 ‘신당’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해 겨울에도 그랬다. 2016년 12월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이 있고 이듬해 1월 출범한 그 당의 첫 이름은 ‘개혁보수신당’이었다. 처음 ‘개혁보수신당’의 기치를 들었던 인사 중 일부는 지금 집권당에서 다시 ‘신당’ 깃발을 들고 있다. 그때는 그 정부를 탄생시켰던 과오에 면구스러워하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나도 이 대통령한테 구박받고 있으니 면죄부를 받았다’, 혹은 ‘대한민국 사람 다수가 속았던 것처럼 나도 속았다’고 스스로 면죄부를 준 모양이다.
그해 가을과 겨울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왜 우리는 지난번 겪었던 일을 불과 7년 만에 훨씬 더 나쁘게 되풀이해 겪고 있을까? 살면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때는, 대개 지난 잘못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문제를 고치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을 때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7년도 그러지 않았을까?
혹자는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어려움을 그때 그 대통령과 지금 이 대통령에게 표를 준 동료 시민들 탓으로 돌린다. 동의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과거야 어쨌든, 지금 이 시점에서 설득과 동의로 다수를 형성하면서 유지되는 체제다. 생각이 다른 이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인식과 행태는 독재나 전체주의의 사회적 토양이 된다.
누구는 그때 ‘국정농단’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더 철저히 응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법행위에 적절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한 응징의 욕구는 오늘의 사태를 야기한 한 원인일 수 있다. 지난 정부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특수부 검찰들은 늘 하던 대로 불법한 피의사실 공표행위를 공공연히 자행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불법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누군가를 응징하라는 목표만 충족하면 된다’는 태도가 지금 법 위에 군림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검사를 만든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생각건대 우리의 잘못은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앞에서 사회적 공론을 멈춘 것이다. 우리는 ‘국정농단’에 정당하게 분노했고 책임을 물었지만, ‘그래서 어디로 갈 것인가’에 관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검찰개혁’으로, ‘개헌’으로, ‘사회경제개혁’으로 분화되면서 방향을 잃은 채 두달 뒤 등장한 정부에 모든 방향 설정을 위임해 버렸다. 2024년 총선에서 또 이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누구를 응징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총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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