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90주년 전시 ‘외출감행: 1933 신여성 여기, 오다’

문영훈 기자 2023. 10. 27. 0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성동아’가 창간 9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표지화 전시회 ‘외출감행: 1933 신여성 여기, 오다’가 11월 초 서울 성수동에서 독자들과 만난다. 

장완 화백(가운데)와 안현배 미술사학자, 테이프 아티스트 조윤진,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김학진)와 반트(김승유)(왼쪽부터).
‘여성동아’가 11월 3일부터 12일까지 창간 90주년 기념 전시회 '외출감행: 1933 신여성 여기, 오다’를 개최한다. '여성동아’는 1933년 1월 '신가정’ 창간호부터 1981년 3월호까지 206권의 잡지 표지를 당대 화백의 그림으로 장식했다. 이상범, 천경자, 문학진 등 당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여성 인물화다. 오랜 세월 동아일보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표지화 40여 점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또 해당 표지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와 반트, 테이프 아티스트 조윤진이 재해석 작업에 참여했다. 작품은 서울 성수동 소재 스튜디오 LES601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여성동아’의 역사는 1933년 창간한 '신가정’으로부터 시작됐다. 개항기 이후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을 겨냥한 잡지였다. 창간사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한 가정이 새롭고 광명하고 정돈되고 기름지다고 하면 그것은 그 개인 그 가정만의 행복이 아니라 그대로 조선 사회 조선 민족의 행복으로 볼 것입니다. 그렇거늘 어찌 주부의 지위와 그 가치를 예사로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범부터 김숙진까지 206점의 표지화

조윤진 작가가 그린 ‘여성동아’ 표지화 작가들의 초상화
주부의 사회적 위상에 주목한 '신가정’ 창간호 표지화는 청전 이상범(1897~1972)이 그렸다. 그는 산수화의 대가이자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1927년부터 1937년까지 청전은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근무했다. 그가 그린 표지화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다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모자 사이엔 계몽과 새벽을 상징하는 수탉이 놓여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이 그림은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와 반트에 의해 재현된다.

1967년 11월 복간한 '여성동아’의 표지를 장식한 이는 수채화의 대가 전상수다. '지성적 여유’라는 작품 제목이 일제의 폭압에 폐간됐다 이름을 바꿔 복간한 '여성동아’의 지향점을 시사한다. 1969년 1월호 표지화에서는 한국의 독보적인 화가, 천경자(1924~2015)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동아’ 표지화에 천경자가 참여한 것은 총 세 차례로, 1971년 6월호와 1974년 2월호를 추가로 그렸다. '꽃과 여인의 화가’라 불린 천경자답게 첫 작품을 제외하고는 꽃과 여성의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다.

브릭 아티스트 반트가 작업 중인 장완 작가의 1980년 5월호 표지화.
족두리를 쓰고 있는 여인을 그린 1974년 2월호 표지화 '작가의 말’에서 천경자는 "시집간다는 것은 인당수 물에 들어가는 것처럼 무서운 출발인지도 모른다"고 운을 뗀다. 파격(破格)의 화가다운 글이다. 그가 그린 3점의 표지화 원작을 이번 전시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이른바 '족두리 여인’은 테이프 아티스트 조윤진과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 반트가 각자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천경자가 '여성동아’의 시작을 함께했다면 김숙진은 '여성동아’의 마지막 표지화인 1981년 3월호를 그렸다. 김숙진은 1958년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뒤, 3년 연속 국전 특선에 오른 원로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숙진이 그린 1980년 9월호 표지화가 소개된다.

한국 모더니즘의 1세대로 불리는 문학진과 '여성동아’의 인연도 뗄 수 없다. 그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10점의 '여성동아’ 표지화를 남겼다. '103위 순교 복자 성화’(1977) 등 대형 기록화나 추상화로도 유명한 그지만 1970년대에는 여성과 정물을 그린 작품을 다수 남겼다. '여성동아’의 표지화는 그 작업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문학진 화백의 표지화 중 4점이 공개된다. 1968년 7월호, 1972년 9월호, 1973년 5월호, 1973년 6월호다. 부드러운 채색과 맑고 가벼운 분위기가 그의 표지화 특징이다. 브릭으로 재구성될 1973년 5월호 표지화에 대한 문학진 화백의 설명을 읽어보자. 마치 소설의 한 문장 같다.

"여기 한 여인이 앉아 있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여인에 부딪혔다. 그 빛은 분광되고 그 여인은 눈부신 빛을 분산한다. 색과 색이 서로 얽히는 빛의 교향악처럼, 꿈과 꿈이 난무하는 광선, 청춘을 구가하는 5월의 햇빛이다."

1977년 8월호를 시작으로 1979년까지 15점의 표지화를 남긴 김형근(1930~2023)은 현대적 시각으로 토속적인 소재를 재해석한 화가로 기록된다. 재해석 작업에 참여한 테이프 아티스트 조윤진은 특히 김 화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1978년 2월호, 1978년 10월호, 1979년 12월호 등 3점을 재해석할 작품으로 골랐다. 조윤진은 "김 화백님의 그림을 보며 미국의 거장 알렉스 카츠가 떠올랐다. 오래된 작품인데도 요즘과 같은 '힙함’이 느껴져 나의 방식대로 재해석하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은 레고 아티스트 반트가 재현했다. 이 작품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탈바꿈한 재해석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전시를 한 달여 앞둔 9월 25일, 1980년 1월호부터 7월호까지 총 7점의 표지화를 그린 장완(84) 화백이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을 찾았다. 뛰어난 색채와 대담한 터치로 자연과 인물을 담아냈다고 평가받는 그는 "1980년 인물 공부를 시작하던 차 '여성동아’의 요청을 받고 표지화를 그리게 됐다"며 "최고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날 장 화백은 재해석을 담당한 신진 작가들과 환담의 시간도 가졌다. 장 작가는 1980년 스페인에서 파리 국제전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억을 추억하며 작가들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브릭 아티스트 반트는 장완 화백의 1980 5월호 표지화를 재해석한 이유에 대해 "그림에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 화백은 "당시 개나리가 피던 봄이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미술학원의 한 선생님을 모델로 골라 표지화를 그렸다"고 답했다.

‘외출감행: 1933 신여성 여기, 오다’를 통해 1930년대, 1960~ 80년대 신여성을 2023년의 성수동으로 불러들인 데는 세 작가의 공이 크다. 조윤진 작가는 앞서 소개한 작품을 비롯해 10점이 넘는 그림을 재해석하고 천경자, 문학진 등 5명의 작가 초상을 그려내는 작업에도 매진했다.

신여성을 성수동으로 소환한 작가들

조윤진은 2013년 테이프 작업을 시작해 올해 꼭 10년을 맞았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지, 신문을 이용한 콜라주 작업을 하다가 투명한 색 테이프에 정착했다. 테이프는 그에게 물감이자 그림의 대상과 자신을 밀착시키는 소재로 작용한다. 붓칠로 그림에 겹을 더하듯 테이프를 쌓고 나이프로 자르며 작품의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3차원 브릭으로 회화를 재해석한 작품 역시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묘미다.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 반트는 천경자의 '족두리 여인’ 그림을 포함해 총 7점의 작품을 만들었다. 건축학을 전공한 진케이(김학진)는 2014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스팀펑크 아트전’에 레고로 만든 작품 '코끼리’를 출품하며 브릭 아티스트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현재 CJ ENM, 리바이스 등 다양한 기업과 활발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김학진은 "방망이를 깎는 노인처럼 레고를 쌓는 노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처음엔 '여성동아’ 표지화 재해석 작업이 그 자체로 즐거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90년의 역사가 느껴져 부담감이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반트(김승유)는 지난 7월 전 세계 20명 내외인 레고 공인 작가(LEGO Certified Professional)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대표작으로는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중 하나로 히로시마 원폭으로 소멸된 작품과 화실을 복원한 'To Van Gogh From Vant’, 코로나19가 남긴 예술인의 고통을 나무와 새로 표현한 'REBORN’ 등이 있다.

외출감행: 1933 신여성 여기, 오다 展
관람기간 11.03~11.12(11월 6일 월요일 휴관)
시간 12:00~20:00(11월 12일은 17시까지 운영)
장소 서울 성동구 연무장17길 4 LES601 성수
관람료 무료

#외출감행 #천경자 #문학진 #표지화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동아DB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Copyright © 여성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