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암컷도 폐경한다···야생에서 첫 발견

한세희 과학전문기자 2023. 10. 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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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응고고 집단에서 관찰···"인간 폐경 진화 과정 규명에 도움"

(지디넷코리아=한세희 과학전문기자)야생 암컷 침팬지에게서 처음 폐경 현상이 관찰됐다. 지금까지 폐경은 사람과 일부 고래 종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영장류를 포함한 포유류 암컷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새끼를 낳는다.

아프리카 우간다 서부 키발레국립공원 내 응고고 숲의 야생 침팬지 집단에 대한 장기 관찰 조사 결과, 이 집단의 암컷 침팬지는 사람 여성과 비슷하게 폐경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사람처럼 출산 능력이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더 살았다.

26일(현지시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이 연구는 사람 여성이 다른 대부분 동물과 달리 폐경 이후에도 상당히 긴 세월 수명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폐경 이후에도 상당 기간 생존한 응고고 지역 암컷 침팬지들. 왼쪽의 말(MARL)과 가운데 마르(MAR)는 각각 69세와 64세에 죽었으며, 오른쪽 서덜랜드(Sutherland)는 61세로 아직 살아있다. (사진=사이언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로스앤젤리스대학(UCLA)과 아리조나주립대학 등 연구진은 응고고 침팬지 집단에 대한 장기 추적 연구를 하고 있는 '응고고 침팬지 프로젝트'와 협력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야생 침팬지가 사람처럼 폐경을 한다

연구진은 1995년부터 2016년까지 수집한 지역 내 암컷 침팬지 185마리의 사망과 출산 기록을 조사했다. 14세에서 67세 사이의 암컷 66마리의 소변 샘플을 야생에서 채취해 호르몬 수준도 검사했다.

그 결과, 이 지역 야생 암컷 침팬지는 30살 이후 출산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50세 이후엔 새끼를 낳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 50세를 지나 사는 개체가 종종 발견됐으며, 새끼를 낳지 않게 된 이후 살아간 기간은 성체가 된 후 수명의 20%에 이르렀다. 이는 사람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대부분 다른 동물은 죽을 때까지 새끼를 낳으므로 이 비율은 0%다.

또 이들 암컷 침팬지의 에스트로겐이나 성선 형성 호르몬, 황체 호르몬 등 분비에도 폐경을 맞는 여성과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고고 지역 암컷 침팬지의 출산률과 수명 (사진=사이언스)

이번 연구가 폐경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했다. 사람 여성에게서 유독 폐경이 나타나는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진화적 이점이 명확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생식을 하기보다는 폐경 이후 여성이 자녀와 손자를 돌봄으로써 이들의 생존을 돕고, 자신의 유전자가 더 많이 확산되도록 한다는 '할머니 가설'이 이런 현상에 대한 대표적 설명이다.

이점 없어 보이는 폐경, 왜 생겼을까?

하지만 암컷 침팬지는 자란 후 무리를 떠나 다른 집단으로 가기 때문에 보통 성체가 된 딸과 가까이 살지 않고, 손자를 돌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응고고 집단에선 보통 야생 침팬지와는 달리 폐경이 나타났다. 진화 과정에서 폐경이라는 현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한 할머니 가설의 설명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몇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응고고가 양식이 충분하고 천적이 없는 좋은 환경을 가진 덕분에 폐경이라는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야생 침팬지는 폐경을 겪지 않지만, 사람이 충분한 영양을 제공하고 잘 돌보며 사육하는 침팬지는 폐경이 일어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침팬지가 폐경을 하도록 진화했지만, 사람과 접촉하면서 환경이 나빠져 연구자들이 폐경을 관찰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침팬지는 사람에게서 유래해 면역을 갖지 못한 질병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다른 집단으로 시집 간 침팬지는 집단 내 다른 암컷과 경쟁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번식을 멈춰 이같은 경쟁에 들어가는 포괄적 적응 비용을 줄이려 한다는 '재생산 갈등' 가설의 손을 연구진은 들어주었다. 할머니 가설과 재생산 갈등 가설은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며, 모든 인간 사회에서 여성이 폐경 이후에도 오래 살아가는지 설명하기 위해 두 가설 모두 필요할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봤다.  

브라이언 우드 UCLA 인류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로 폐경 및 이후의 생존이라는 현상이 보다 다양한 종이나 사회생태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됐다"며 "식이 개선이나 천적의 위협의 감소 등이 사람의 생애사 진화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데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나이 든 침팬지 개체의 행태를 추적하고 그들이 집단 내 다른 구성원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는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를 위한 장기 추적 관찰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한세희 과학전문기자(hahn@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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