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는 왜 곰탕이 유명할까…슬픈 역사와 만난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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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고아 낸 맑은장국이 떠오르는 '나주곰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930년대 일제가 전남 나주에 지은 군용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곰탕의 역사가 태동했다는 내력을 아는 외지인은 별로 없다.
국내 유일한 설치미술 전문 국제 미술잔치인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는 옛 화남산업 공장 외에도 유서 깊은 역사도시인 전남 나주 원도심 일대와 영산강 기슭에 강용면, 이상용, 김병호 등 15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등을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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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 국내외 작가 참여
곰탕 얽힌 일제 옛 공장 등
나주 원도심 일대 등서 전시
소고기를 고아 낸 맑은장국이 떠오르는 ‘나주곰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930년대 일제가 전남 나주에 지은 군용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곰탕의 역사가 태동했다는 내력을 아는 외지인은 별로 없다.
나주곰탕의 내밀한 역사를 탐구해온 소장 현대미술가 민성홍씨가 이달 들어 곰탕에 얽힌 공간에서 색다른 설치작업을 꾀했다. 여전히 건물을 부지하고 있는 옛 통조림 공장에 잠입해서 폐기물을 활용한 자신의 신작을 내걸었다. 곰탕의 숨은 역사와 현대미술이 만나는 판을 벌인 것이다. 지난 20일 나주시 주최로 첫회 행사를 개막한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2023’의 주요 작품 전시 현장인 나주 원도심 죽림길 공장이 무대다.
지은 지 90년이 다 되어 스러져가는 서너동의 공장엔 옛 작업시설과 일부 생산품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가동을 시작해 해방 뒤에도 1970년대까지 소고기·과일 통조림을 만들던 옛 화남산업의 공장으로 명맥을 이었다.
2700평의 큰 규모로 지어져 일본군에 전투식량으로 줄 소고기 통조림을 만들었는데 하루에만 200~300마리의 소를 도축했고,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 때는 하루 최대 400마리 이상의 소를 잡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는 이 공장에 동원돼 일하던 나주 사람들에게 봉급 대신 소의 주요 고기를 뺀 내장과 머리 등의 각종 부산물을 주었다. 생계를 잇기 위해 이 부산물을 끓여 나주 장터에서 내다 팔기 시작한 것이 바로 나주곰탕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공장 안뜰에는 일제강점기 희생된 소들을 위해 세운 위령 비석이 서 있기도 하다. 이런 애잔한 사연을 품은 공장 안의 텅 빈 공간 여기저기에 민 작가는 쓰레기통이나 길에서 주운 이발소풍의 산수그림들을 다시 천에 인쇄해 허공에 부유하는 듯한 이동식 텐트의 모양새로 여기저기 내걸어 놓았다. 역시 사람들이 버린 잡동사니나 일상 기물들도 사람의 몸 모양으로 재조합한 설치물 얼개로 꾸려 바닥에 놓았다. 다른 한편에 방치된 폐의자들이 쌓인 모습과 아직도 먹지 않은 1960~70년대의 과일 통조림 더미들까지 함께 시야로 들어오면서 시각적 효과는 배가된다. 식민지배와 전쟁, 가난과 생계 등의 여러 시간적·공간적 조건 속에서 몸부림쳤던 나주 사람들의 삶이 어렴풋하게 잡히는 듯하다.
민성홍 작가의 설치작 ‘비정형’ 연작 외에도 이 폐공장의 외벽에서는 일제강점기 무더기로 도축된 소들의 희생을 애도하는 베트남 작가 하이뚜의 벽화 ‘쉬고 있는 소 영혼’을 볼 수 있고, 중견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씨는 ‘책 읽어주는 소녀’란 대형 영상작품을 통해 전쟁의 현실과 이상향의 꿈 사이에서 살아온 이 땅 사람들의 내면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국내 유일한 설치미술 전문 국제 미술잔치인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는 옛 화남산업 공장 외에도 유서 깊은 역사도시인 전남 나주 원도심 일대와 영산강 기슭에 강용면, 이상용, 김병호 등 15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등을 펼쳐놓았다.
옛 나주역사, 나주정미소, 금성관, 나주향교, 서성문, 나주목사 내아 금학헌, 나빌레라문화센터, 영산포 등대, 영산나루 등 모두 10곳을 차분히 돌아보며 역사와 시각예술의 낯선 만남을 즐길 수 있다. 11월30일까지.
나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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