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채무는 아편”vs“채무 보호해야”…‘빚더미’ 딜레마 빠진 중국
■"난 해결 못하겠어!" 삭제된 SOS…중국 지방정부 빚, 얼마나 많길래?
"재정적 한계로 채무를 갚을 수가 없습니다. 자체적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올해 4월 구이저우성 발전연구센터는 성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더 이상 채무를 갚을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중앙정부를 향해 도와달라고 SOS를 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이 글은 곧 삭제됐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이 문장을 검색해보면 '현지에서 당시 이런 이야기가 돌았다'라고 완곡하게 돌려서 보도하는 기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달 20일, 구이저우성은 기존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약 882억 4천만 위안(약 16조 3641억 원) 규모의 특별 재융자 채권(특별 리파이낸싱 채권)을 발행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일 기준으로 특별 채권 발행 계획이 알려진 성은 중국 전역에서 구이저우를 포함해 19곳입니다. 채무로 인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곳이 비단 구이저우 한 곳만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중국 지방정부의 채무는 크게 두 종류 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채무액이 있고,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채무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자금 조달을 위해 세운 특수법인 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를 통해 끌어다 쓴 돈입니다.
지방정부들은 LGFV를 통해 우회 경로로 자금을 마련하고 이 돈을 각종 인프라 사업 등에 투자하는데, LGFV를 통한 채무는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IMF는 이 규모가 약 66조 위안, 중국 GDP의 53%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에 구이저우성 등이 발행한 특별 재융자 채권이 그림자 채무 스왑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GFV 채무 스왑에 쓰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채무는 아편" VS"채무 보호해야"…딜레마 빠진 중국
대체 어쩌다가 빚이 이렇게 늘어났을까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발생 이후 중국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4조 위안 규모의 재정 정책을 내놓습니다. 지방정부 역시 이에 보조를 맞춰 빚을 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중국 지방정부 채무 문제가 입길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지방정부들은 LGFV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인프라 사업에 투자합니다. 최근들어 점차 중소도시들도 대도시 못지 않게 잘 갖춰진 교통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는데 수년간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꾸준히 진행된 덕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결국 채무가 도시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중국 내부적으로 시각이 갈리고 있습니다.
먼저 '채무는 지방정부의 도시 경영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오옌징 샤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채무를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에 따라 중국은 반드시 최대한 빨리 거대 시장을 형성해야하고, 중국의 대차대조표는 결코 단기간 내에 축소되어서는 안됩니다."
…(중략)…
"저는 수천년간 미시적으로 채무에 대한 혐오감이 생성된 데에 근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경제가 이미 전통 경제에서 현대 경제로 진화했음에도, 아직도 과거의 관념은 자동적으로 업그레이드되지 못했고, 채무를 언급하기만 하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급 정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해서 빨리 레버리지를 없애고 채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레버리지와 채무를 없애는 동시에 소비도 사라진다는건 생각지 못합니다."
자오옌징 / 올해 4월 강연 '채무와 성장' 중 발췌
반면 자오젠 중국 시징연구원 초대 원장은 "채무는 아편"이라며 채무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채무가 신용과 자산을 초과해버리면 일종의 '아편'이 됩니다. 아편을 흡입할 때는 정신이 번쩍 들고 뭐든 할 수 있고 성공할 것만 같은 환각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약 기운이 사라지고 나면 몸에 무리가 오고 기진맥진해서 결국은 무너져버리게될 겁니다.
…(중략)…
코로나 3년을 겪으면서 중국 경제는 지금 분명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채무라는 아편을 대량으로 계속 흡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활력이 돌아온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여건 하에서 약을 하면 붕괴의 가속화로 귀결될 뿐입니다.
물론 약을 끊는 것이 단기적으로 더 어려울 수 있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고통을 참아내야 합니다. 이 고통이 시장 경제의 번영과 민영 기업의 회복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말입니다.
자오젠 / 올해 2월 '중국 수석 경제학자 포럼' 기고글 중 발췌
■무분별한 인프라 투자 도마 올라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습니다만, 채무 문제가 본격적으로 지적받기 시작한 최근 들어서는 채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에 중국 내부적으로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특히 중국 지방 도시들의 발전을 이끌어온 인프라 건설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사업을 위해 무분별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방정부가 건설, 공사,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무계획성이 크고, 건설 규모도 큽니다. 예를들면 많은 지방정부들이 사실 (인구가) 1~2백만 정도라 지하철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대도시, 중소도시도 이렇게까지 지하철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우톈융 / 둥베이 재경대학 국민 경제 공정 연구실 주임 (제몐신원 인터뷰 중 발췌)
물론 중국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 만은 아니라서 2015년 지방정부가 다른 우회적 방법이 아닌 채권 발행을 통해서만 빚을 낼 수 있도록 했는데, 그럼에도 그림자 채무는 급속도로 증가했습니다.
2018년에는 국무원이 지방정부를 향해 향후 5~10년 내에 그림자 채무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올해가 5년이 되는 시점인데 오히려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부동산' 의존 수입원이 화 키워…디폴트 한 번에 '위기설'
빚이 많아도 안정적 수입으로 유동성을 공급한다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찌어찌 버텨온 지방정부 채무 위기는 3년간의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더 이상 눈을 돌리기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중국 지방정부의 주요 수입원은 부동산입니다. 지방정부는 토지의 사용권을 부동산 개발 업체에 판매하고, 부동산 개발 업체는 이렇게 사용권을 구매한 뒤 아파트를 지어 판매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얻는 수입이 전체 수입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지방정부가 토지사용권 판매를 위해 은행에 부동산 개발 업체에 저리로 대출을 해주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구이위안 등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가 흔들리니 그 여파에서 마냥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코로나에 따른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던 비구이위안이 결국 달러 채권 이자를 내지 못하고 25일 디폴트에 빠졌습니다.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지방정부의 수입원 감소와 채무위기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대형 개발업체들이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과 영향력을 따져보면 생각보다 파급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많지만, 어찌됐든 부동산 개발업체와 지방정부가 이토록 자주 결부되면서 우려를 자아낸다는 사실 자체가 재정구조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조 위안 국채 발행한 중국…지방정부 위기 해결 복안은 '아직'
중국 중앙 정부가 올해 4분기 1조위안, 우리돈 184조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기로 24일 결정했습니다. 자연재해 피해 복구 및 예방 시스템 구축에 투입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1조 위안이라는 규모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번 국채 발행으로 GDP 대비 재정 적자율이 이전 목표치보다 0.8%포인트 오른 3.8%가 됩니다. 중앙정부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겁니다.
중국 정부는 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합니다.
"올해 적자율이 소폭 올랐지만 중국 정부의 채무율은 여전히 합리적인 구간에 있으며 리스크도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 국채 자금이 투입돼 사용되면 국내 수요를 진작시키고 더 나아가 중국 경제가 회복되고 나아지는 흐름을 더 다질 수 있어"
주중밍 / 중국 재정부 부부장
IMF의 추산에 따르면, 2022년 말 중국 정부 GDP대비 채무 비율은 110%입니다. 이 비율이 미국은 123%이고 일본은 226%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감당 가능한 수준의 채무율이라고 설명하는 중국 정부의 말도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 채무 가운데 중앙 정부의 채무 비중이 낮고 지방 정부의 채무 비중이 높다는 점이 중국 내부적으로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2021년말 기준으로 전체 정부 부채 가운데 중앙 정부의 부채는 20%였고, 나머지 80%는 지방 정부의 채무였다는겁니다.
이번 국채 발행 결정을 두고도 이처럼 지방 정부가 과도한 채무 부담을 지고 있는 구조를 고려해 중앙정부가 재난 복구와 자체적인 내수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기 어려운 지방정부들을 도우면서 그 부담을 대신 지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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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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