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 더딘 급여확대에 치료 포기하는 환자들
보험급여는 제한적…연간 약제비 수천만원
건강보험 재정 문제에 '별도기금' 대안으로
"경제적인 여력이 되지 않아 키트루다를 사용하지 못하는 암 환자들이 많다. 키트루다는 수술 전·후 치료를 모두 받아야 전이나 재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환자들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비용 때문에 수술 전 치료만 받고 수술 후 처방을 포기한다."
삼중음성유방암 환우회 우리두리구슬하나 이두리 대표는 면역항암제 급여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의 어려움을 묻는 기자의 말에 이같이 답했다.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는 수술 전·후 보조요법으로 삼중음성유방암에 대한 높은 치료효과를 확인했으나 연간 수천만원에 이르는 약제비에 항암치료를 못 받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다.
키트루다는 보통 3주에 1회씩, 1년에 약 17회의 투약이 이뤄지는데 한 번 주사할 때 총 200mg을 투여한다. 현재 키트루다의 약값은 1바이알(100mg)당 210만원으로 1년 치료비용은 단순 계산해 7000만원이다. 반면 선별급여를 적용받으면 이 중 5%만 환자가 부담해 치료비용은 300만원으로 줄게 된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의 면역회피 기전을 억제해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하는 3세대 항암제다. 정상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해 부작용 위험이 적다. 특히 삼중음성유방암뿐 아니라 식도암 등 그동안 치료가 제한적이었던 희귀암종에 대한 폭넓은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암종은 이와 비교해 제한적인 편이다. 키트루다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삼중음성유방암, 식도암 등의 희귀암을 포함한 14개 암종에 대한 적응증을 허가받았다. 그러나 보험급여 대상인 암종은 비소세포폐암, 악성흑색종, 호지킨림프종, 요로상피암 등 4개에 그친다.
다른 면역항암제도 급여가 제한적이긴 마찬가지다. 현재 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는 비소세포폐암, 악성흑생종 등 6개, 로슈의 '티쎈트릭'은 비소세포페암, 소세포폐암 등 3개, 머크의 '바벤시오'는 피부암, 요로암피암 등 2개 암종에 대한 보험급여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한국MSD가 삼중음성유방암, 식도암 등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13개 암 적응증에 대한 급여확대를 시도했으나 첫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 11일 열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식도암, 자궁내막암, 위식도 접합부 선암에 대한 급여 재논의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급여 재논의 결정이 내려지면 제약사는 약가나 임상 데이터, 전문가 자문 등 급여를 설정하기 위한 추가 자료를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항암제의 보험급여는 암질환심의위를 통과한 후 약제급여평가위원회, 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 단계를 거친 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환자들의 어려움에도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수지를 고려해 고가약의 급여를 확대하기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1인당 연간 재정 소요 금액이 3억원 이상 드는 고가약은 13개 품목으로, 당해 1469억원이 청구됐다. 2016년과 비교해 5년 사이 약 4배 증가한 규모다. 현재 복지부는 건강보험 수지 적자가 올해 1조4000억원에서 2028년 8조9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급여를 확대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희귀암 환자의 의료비 지원을 위해 별도 기금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이를 위해 지난 2020년 암 의료비 지원, 연구 및 진료 사업에 필요한 재원으로 '암관리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의 암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암관리기금의 재원은 담배세로 조성한 국민건강증진기금에 정부출연금, 기금 자산운용 수익 등을 더해 마련한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2021년 복권 수익금의 일부를 희귀질환 및 중증질환자 보험급여로 사용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해외에선 이미 이러한 제도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호주는 의약품급여체계(PBS)에 등재되지 못한 고가의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 형태로 기금을 지원하는 'LSDP'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제약사 기금으로 시판 허가를 받기 전인 희귀의약품을 공급하는 '5% AIFA 기금'을 두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과거와 달리 희귀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약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개발과정 특성상 고가로 책정되는 문제를 환자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연간 약제비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경제력 수준을 벗어난다"며 "이러한 희귀중증 질환 치료제의 접근성을 낮추는 일을 국민건강보험의 재정만으로 할 수 없다면 별도 기금을 만들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김윤화 (kyh9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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