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섭의 내로남불] 바람잘날 없는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의 인기가 없는 이유
역대급 계파 갈등을 겪고 있는 야당이, 여당보다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순항하는 사례가 한국 정치 역사에서 또 있나 싶다. 사법리스크를 털어야 한다며 체포동의안 가결로 당 대표 거취를 정면 저격하고, 이를 본 특정 팬덤은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는 같은 당 정치인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란 듯 날리고 욕설을 동반한 시위를 벌인다. 심각한 수준의 뺄셈 정치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확인한 득표율 차이는 정치권에 충격을 던졌다. 설사 여론조사 결과였다고 해도 쉽게 믿기 힘든 결과 '39%:56%'. 17%포인트 차이에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선거 후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입법 주도권이 사실상 절대 다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게 있어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번번히 가로막히는 것도 모자라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을 방어하는 데 급급한 세월을 보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일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성공하는 등 지지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상당한 노력과 성과를 보여줬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김기현 대표 체제를 세운 뒤엔 당내 잡음도 점점 줄여나갔다. 그럼에도 바닥 민심은 차갑기만 하니, 유권자들이 보수정당에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한탄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걸어온 일련의 길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권자들이 범여권에 관심을 줄만한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예를 들어 민주당은 '지지층만 바라본 법', '특정 직군을 갈라치는 내용의 무리한 입법' 등의 비판을 무릅쓰고 지지층에 필요한 법안을 본회의에 올렸다. 그런데도 이를 받아든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등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쓰지 않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다렸다. 절박함은 없고 무기력함만 보여준 셈이다.
이는 지난 2015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슬아슬한 긴장관계를 보여주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때와 정확히 대비된다. 당시 두 사람이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당정관계가 불안하다는 평가가 계속 나왔지만, 동시에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쓸어가면서 진보정당엔 관심이 사라졌다. 당시 문재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지지율은 20% 초반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민주당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낡은 운동권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양 진영의 전세가 뒤바뀐 것은 '옥새런 사건' 등 2016년 총선 직전이다.
나아가 범보수층은 그간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효능감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경제에서 가장 크게 체감했어야 하지만, 대형 마트 의무 휴일·일회용품 의무 사용 등 문재인 정부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부동산 가격을 잡은 것이 윤석열 정부의 달라진 점이었지만, '영끌'한 청년층의 고통 호소 우려와 '역전세, 깡통전세' 같은 집값 하락으로 인한 부작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빛이 바랬다. 윤석열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3대 개혁도 어디까지 왔는지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이준석 사태 이후 그의 존재감을 지울만한 청년 정치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유권자들의 보수정당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린다. 30대 장관을 많이 앉히겠다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60대 장관이 많이 보였고, 정치적 논란에 선 인물들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올드보이라고 할 수 있다. '세대포위론'이 없던 과거에도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40세 안팎에서 정계에 입문해 롱런하는 정치인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진영이 내부의 고령사회화조차 막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이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발탁하고, 청년과 여성을 대거 영입하며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신지예 영입 사건'을 겪었던 지지층은 곱지 않은 시선도 함께 보내고 있다. 앞으로 불거질 '바람 잘 날 없는' 모습도 민주당처럼 국민의힘이 한 번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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