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주식부자’가 석방되자마자 손 댄 스캠코인[꾼들의세계]
※금융시장이 커질수록 그 속에 숨어드는 사기꾼도 많아집니다. 조 단위의 주가조작부터 수천억원에 이르는 횡령, 트렌드에 따라 아이템을 바꿔가며 피해자를 속이는 보이스피싱까지. 기발하고 대범한 수법은 때론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꾼들의세계’는 시장에 숨어든 사기꾼들의 수법을 들여다보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청담동 주식부자 사건, 기억하시나요? 증권 전문방송 등에서 주식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SNS로 재력을 과시한 이희진씨(37)의 불법 주식거래와 투자유치 사건입니다. 이씨와 동생 이희문씨(35)는 비인가 투자매매회사로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700억원 상당의 주식을 매매해 시세차익 130억원을 챙기고, 2016년 2월부터 6개월간 원금과 투자수익을 보장해준다며 투자자 돈 240억원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3년6개월·벌금 100억원·추징금 122억67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2020년 2월12일 확정했습니다. 동생 이씨는 징역 2년6개월·집행유예 4년·벌금 70억원의 선고유예가 확정됐습니다.
이씨는 3년8개월 만에 다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단장 이정렬 부장검사)은 지난 4일 이씨 형제를 사기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직원 김모씨(34·구속)와 함께 2020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스캠코인 3개를 발행·상장한 후 허위·과장 홍보로 투자자를 유인해 시세조종으로 약 897억원을 편취(사기)하고 코인판매대금 약 270억원을 유용(특경법상 배임)한 혐의입니다.
스캠은 ‘신용사기’를 뜻하는데 가상자산 업계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투자자를 현혹시켜 투자금을 유치한 뒤 파산하거나 잠적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코인 발행 재단이 사업 실체를 속이고 투자금을 가로채는 코인을 스캠코인이라고 합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씨는 수감 중인 2019년 4월에 이미 코인 발행업체를 차명으로 설립하며 또 다른 범죄를 준비했습니다. 석방 직후인 2020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스캠코인 10개를 직접 또는 위탁받아 발행·유통했다고 합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공소장을 보면 이씨 형제는 코인 추천 유튜브 방송·카카오톡 단체대화방·커뮤니티에 호재성 정보를 유포하고, 영상 게시 시점에 맞춰 코인 시세를 끌어 올린 후 고점에 매도했습니다. 자전거래 봇(특정작업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자동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장매매로 거래량을 계속 발생시켜 가격 하락을 막기도 했습니다.
언론과 공시정보 플랫폼에서 2019년과 2020년에 제기된 차명 법인 의혹에 거짓 답변을 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시세 부양에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씨가 계획부터 실행까지 수년에 걸쳐 한 범죄 행위를 보면 그야말로 ‘꾼’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상자산 투자를 하지 않는 분이라면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피의자도, 피해자도 어설펐던 스캠코인 피해 사례도 있습니다. A씨는 2018년 2월에 만나 연인관계가 된 B씨에게 “조만간 피스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이라며 “큰 차익을 얻을 수 있으니 피스코인 5만개를 매입하라”고 권유해 1000만원(1개당 200원)을 받았습니다. 브라마OS, RSK, 빙고777 등도 대신 구입해 넘겨주겠다며 속여 현금 1500만원, 6034만원 상당의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2019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A씨의 피스코인 관련 범죄 혐의가 눈길을 끕니다. 검찰은 A씨가 B씨에게 받은 대금을 피스코인 구매에 사용할 생각이 없었고, 피스코인은 2017년 8월25일에 이미 상장돼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으며, 2018년 2월 당시 시세가 1개당 18원 내외에 그쳤다며 “A씨는 피스코인의 상장 여부와 시가 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A씨는 재판부에 “피스코인이 이미 상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기의 구성요건 중 하나인 ‘기망(속임)’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큰 차익을 볼 수 있다는 얘기도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상거래상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는 용인한다는 판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피고인(A씨)이 피스코인의 상장 여부나 가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스스로 이를 확인할 명확한 자료도 없으면서 피해자(B씨)에게 크게 이익을 볼 것이라고 언급한 점은 피해자를 기망한 것이고, 피고인의 미필적 고의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시했습니다.
A씨는 B씨에게 피스코인 정보가 담긴 백서를 보내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A씨와 B씨 모두 백서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백서의 내용은 잘 모르고, (다녀온) 피스코인 세미나에서도 피스코인의 지갑 주소와 동영상만 받아왔을 뿐 피스코인의 상장 여부나 가격은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B씨는 “당시 피스코인이 상장돼 있었고 (시세인 1개당 200원보다 낮은) 18원 내외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9개월, 2심에서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습니다.
이씨나 A씨의 범죄 사례를 보면 투자설명서라고 할 수 있는 백서가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허위 백서를 작성해도 일반투자자가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이미 상장된 코인 백서를 봤다면 미수에 그쳤을 사기가 기수에 이르기도 합니다. 검찰은 이씨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코인 백서의 내용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추상적이고 홍보성 내용에 치우쳐 있다면 스캠코인일 가능성이 크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 7월에 가상자산 주석 공시를 내년부터 의무화하겠다고 밝히고 모범사례도 공개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결국은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처럼 가상자산 시장도 명확한 검증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내년 7월부터 시행되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사업자의 진입과 영업 행위, 발행과 공시 등 시장질서에 대한 내용을 담아야 할 2단계 입법도 필요합니다.
가상자산 데이터 플랫폼 ‘쟁글’을 운영하는 크로스앵글의 김준우 대표는 “기존 자본시장도 회계장부 조작 같은 전문적인 영역은 투자자 개인이 확인할 수 없어서 외부감사인 제도를 두고 있다”면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도 시행까지 9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일을 담당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고 판결문 : 서울서부지법 2021. 2. 16. 선고 2019고단2439, 서울서부지법 2021.8.19. 선고 2021노237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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