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운동’ 야콥슨-레비스트로스 40년 우정의 기록 [책&생각]

고명섭 2023. 10. 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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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구조주의 운동의 주역으로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1896~1982)과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꼽힌다.

'야콥슨-레비스트로스 서한집'은 두 지적 거인이 1942년부터 40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 모음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그 탐구의 결과를 박사학위 논문 '친족의 기본구조'(1949)에서 밝혔고 야콥슨은 음운론 분야에서 구조주의적 발견을 이어갔다.

레비스트로스는 열두 살 위의 야콥슨을 평생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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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구조주의 운동을 일으킨 로만 야콥슨(왼쪽)과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야콥슨-레비스트로스 서한집
로만 야콥슨·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김성재 옮김 l 읻다 l 3만원

20세기 구조주의 운동의 주역으로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1896~1982)과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꼽힌다. ‘야콥슨-레비스트로스 서한집’은 두 지적 거인이 1942년부터 40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 모음이다. 구조주의가 탄생해 한 시대를 휩쓸기까지 두 사람의 긴밀한 교류와 협력의 생생한 현장이 담겼다.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가 처음 만난 곳은 망명지 미국 뉴욕이었다. 러시아 유대인으로 태어난 야콥슨은 볼셰비키 혁명 뒤 체코 프라하에 머물다 나치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한 뒤 반유대주의의 물결에 떠밀려 대서양을 건넜다. 두 사람은 미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유럽의 망명 지식인들이 포진해 있던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의 교수가 됐는데, 이때 쌓기 시작한 우정이 평생 지속됐다.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의 만남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 준 선물이었다.

1926년 프라하 언어학파를 세운 야콥슨은 언어학 분야에서 이미 대가로 인정받고 있었고,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 원시 부족 현장 연구를 토대로 하여 인류학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뉴스쿨에서 서로의 강의에 참석했고 편지 교환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연구 분야는 아주 달랐지만 대상을 들여다보는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자기 연구 분야에서 ‘구조’를 발견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그 탐구의 결과를 박사학위 논문 ‘친족의 기본구조’(1949)에서 밝혔고 야콥슨은 음운론 분야에서 구조주의적 발견을 이어갔다.

1944년 프랑스가 해방된 뒤 레비스트로스가 파리로 돌아가고 야콥슨은 미국에 남아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서로 멀리 떨어진 만큼 두 사람의 편지 교환은 더욱 활발해졌다. 두 학자의 협력을 통해 구조인류학과 구조언어학이 ‘구조’라는 공통지대에서 만났고 뒤에 이 공통지대는 구조주의 운동의 진앙이 됐다.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의 학술적 공조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시 ‘고양이’를 함께 분석한 ‘샤를 보들레르의 고양이’(1962)이라는 공동 논문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서한집의 부록에 이 공동 논문이 실려 있다.

이 공동 작업 직후에 레비스트로스는 4부작으로 된 ‘신화학’을 집필해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들과 함께 구조주의는 사르트르가 주창한 실존주의를 제압하고 프랑스 학문 운동의 주류로 등장했다. 레비스트로스가 1968년 1월23일치 편지에서 “구조주의가 공식적 학설이 돼 가고 있다”고 전하는 데서 구조주의의 그런 위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레비스트로스는 학계가 구조주의를 “곧 금세 비난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예견하는데, 그 말대로 구조주의 운동은 1970년대에 이르러 거센 탈구조주의 물결을 만난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편지는 1982년 3월로 끝난다. 그 몇 달 뒤 야콥슨이 세상을 떠난다. 레비스트로스는 열두 살 위의 야콥슨을 평생 존경했다. 1966년 5월12일치 편지에서 70살이 된 야콥슨을 “존재 자체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부르며 “이 수식어를 온 마음으로 적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야콥슨도 학문적 동지로서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존경심을 곳곳에서 표현한다. 반평생에 걸친 뜨거운 지적 우정이 거대한 사상운동을 일으켜 가는 과정을 이 서한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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