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우중충한 현실에서 반짝이는 조각을 찾아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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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는 언제 놓이는가.
마음이 건너갈 때 놓인다.
마음은 언제 건너가는가.
둘 중 한 쪽이 제 마음을 열어 내보낼 때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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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중 도시농부 고백 사건
소향 외 지음, ‘올해 1학년 3반은 달랐다’(북오션, 2023) 수록작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는 언제 놓이는가. 마음이 건너갈 때 놓인다. 마음은 언제 건너가는가. 둘 중 한 쪽이 제 마음을 열어 내보낼 때 건너간다. 그런데 마음을 열어서 내보내는 일은 녹록지 않다. 상대의 마음이 내 것과 같으리란 법이 없기에 긴장이 된다. 자칫하면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벌이는 축제로 끝날 수 있다. 거절당한 뒤 맞게 될 쓰라린 날들을 생각하면 차마 마음을 열 수가 없다. 그러나 뭉게뭉게 피어난 마음을 없애는 일도 가능하지 않기에, 호감을 품은 이는 괴로워진다.
소향의 단편 ‘하나중 도시농부 고백 사건’은 중학생들 간의 ‘고백’을 다룬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청소년기에 접어든 풋풋한 학생들이다. 한 생명체가 타인에게 설렘을 느끼고 타인에게 설렘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통해 제 몸과 마음을 인식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교정의 일상을 통해 생동감 있게 드러난다.
국내 ‘청소년 문학’ 타이틀을 단 소설의 다수는 입시 문제와 부모와의 갈등을 다룬다. 서열화된 대학의 이름이 청소년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엄마들은 자식을 상위권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자식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린다. 그 과정에서 동심은 멍들고, 아이들은 사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은 일탈을 벌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런 패턴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한국의 입시제도와 과도한 사교육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소설을 통해 엄마들이 ‘피도 눈물도 없이’ 무자비하게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돌리고, 아이들은 순수한 동심을 품은 ‘수동적이기만 한’ 존재인 것처럼 그리는 것은 문제를 납작하게 변형시키는 효과를 낸다. 인물들을 완벽한 선과 완벽한 악으로 설정해 전개하는 이야기는 공동체가 사라져버린 이 시대에 ‘학원’이 돈을 지불하고 보내는 공동체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아이들이 종합적인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하나중 도시농부 고백 사건’이 어딘가에 있는 진짜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은, 이 ‘청소년 소설’이 위에 기술한 전형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악마화된 부모, 입시에 짓눌려 무엇 하나 제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청소년이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여러 사람과 각기 다른 색깔의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만남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우쭐하거나 금세 좌절하는 자신을 관찰하고, 어느 순간 자신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한 명의 ‘사람’이 나온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입시라는 불합리한 제도에 억눌려 있지만, 그럼에도 온전한 한 인간으로 반짝이며 존재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 그 사실을 깨닫고 기뻐하게 된다. 교훈을 주려 하거나 극단적인 전형을 담아내지 않고 우중충한 현실에서 반짝이는 조각을 찾아내는 소설은 고스란히 현실을 비추는 환한 빛이 된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든 이든 십 대 청소년이든, 우리네 인간들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억압받지만,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꼿꼿이 등을 펴고 제 존재를 빛나게 만들어가는 존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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