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사상 초유의 대통령 살인 사건…"그날 궁정동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10.26 조명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10월 26일 궁정동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2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궁정동의 목격자들 - VIP:할아버지'라는 부제로 10.26을 조명했다.
1987년 , 호텔 주방장 출신 요리사 이정오 씨는 엄청난 조건으로 종로의 한 식당에 스카우트 됐다. 그리고 일한 지 1년이 지난 1979년 10월의 어느 날 식당의 단골 VIP 할아버지를 위한 요리 준비로 분주했다.
음식을 다 내보낸 그때, 갑자기 총성과 함께 정오 씨의 허리에 강한 통증이 몰려들었다. 그도 총격을 당했던 것.
그리고 총격이 일어난 지 한 시간 뒤, 국군수도병원 김병수 원장은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신원을 일급비밀에 부친 주검이 등장했다.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 그는 시신의 몸을 확인했고, 배꼽 아래쪽 하얀 반점을 보고 시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사망한 시신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
이 사건은 바로 사상 초유의 대통령 살인 사건 10.26. 79년 10월 26일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의 안전가옥. 김재규 중정 부장이 직접 관리하는 이곳에 박정희 대통령과 김계원, 김재규, 차지철이 함께하는 연회가 벌어졌다.
국내 최고 권력자 4인 한자리에 모인 이곳에는 가수 심수봉과 배우 신재순도 함께 했다. 그리고 이들이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 김재규가 권총을 꺼내 차지철을 저격했다. 이어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며 그를 저격했다. 그 후 다시 장전한 김재규는 숨어있던 차지철을 향해 한 발, 이어 박 전 대통령의 머리를 향해 또 한 발을 쐈다. 그렇게 박정희는 김재규가 쏜 총에 의해 사망했다.
궁정동 안가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박정희와 김재규는 누가 봐도 끈끈한 사이였던 것. 그렇다면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저격한 걸까.
이날 미리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선약을 한 김재규는 박정희와 이중 약속을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야 김재규가 이중 약속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정총장. 이에 김재규는 그에게 사과 후 다시 연회장으로 향했다.
이어 김재규는 박흥주, 박선호 과장에게 총소리가 들리면 청와대 경호원들을 처리하라고 당부했다. 박정희를 제거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된 박선호와 박흥주. 이들은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이기주와 유성옥에게 무장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면 청와대 경호원들을 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총성이 들렸지만 경비원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진행했다. 김재규가 별다른 지침 없이 떠났던 것. 이에 김계원은 박정희의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박선호 과장은 안가 상황을 정리했다.
안가에서 그대로 사라진 김재규는 정승화에게 박정희 사망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자신의 범행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에 어디로 갈 것인지 묻는 정승화. 이에 김재규는 답을 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그와 함께 육군 본부로 향했다.
비상회의에서 자신의 범행 숨긴 김재규, 하지만 모든 것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재규는 김계원이 모든 것을 밝히며 범행 6시간 만에 정승화에게 체포된 것이다.
사건 당일 이기주는 안가의 경비원이었던 석술씨에게 권총과 탄피, 슬리퍼를 숨기라고 주었다. 이에 석술 씨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이것들을 숨겼다. 그리고 다음 날 뉴스를 보고 안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
김재규와 함께 그의 말을 따른 박흥주,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모두 군사 법정에 세워졌다. 내란 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 혐의로 법정에 선 이들. 김재규는 법정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행동은 정권을 잡기 위한 쿠데타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각하를 제거할 시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라며 폭탄 발언을 했다.
8년 동안 4번이나 거사 계획을 했다고 밝힌 김재규. 그의 범행 동기는 유신 헌법 때문이었다.
유신 헌법이란, 대통령은 국회의원 1/3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횟수에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다. 또한 국민의 직접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로 바뀌었다. 유신체제는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종신 집권하도록 설계한 대통령제였던 것.
이미 3번이나 연임했던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해 영구 집권을 꿈꿨다. 이에 김재규는 유신헌법 제정을 하던 때부터 제거 계획을 세웠다는 것.
그리고 10.26의 트리거는 유신헌법을 비판하던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해서 생긴 부마 항쟁이었다. 부마항쟁을 보고 충격을 받은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부터 사태가 악화되면 내가 발포 명령을 하겠다. 대통령인 내가 명령하는데 누가 날 총살하겠냐"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측근이었던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 대한민국에서 1~200만 명 희생한다고 그까짓 게 문제될 게 있냐"라며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던 것.
야수가 된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며 독재정권을 끝내려 했다고 주장한 김재규. 하지만 그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뜻을 따라 함께 재판정에 선 부하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내란 미수범이 되어버렸다. 이에 김재규는 부하들만은 극형을 면하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재판은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매일매일 공판이 진행됐고, 재판정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며 재판을 뒤흔들었던 것. 그 중심에는 바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있었다.
전두환은 10.26 합동수사본부장 취임 후 서열이 수직 상승했고, 박 통령 사망 두 달 후인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자들 셋이 사라진 나라에서 붕 떠버린 권력을 낚아챈 것이다.
그리고 김재규의 재판은 대법원 판결까지 5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마치 신군부의 시간표에 맞추기 위한 속도전 같았다.
대법원은 김재규를 포함한 모든 피고인들을 사형으로 확정했다. 그리고 총기를 숨겼던 석술 씨는 징역 3년형에 처했다.
당시 이들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는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최종판결 4일 후 사형이 집행됐다. 그리고 재심 신청서는 1980년 8월에 기각되었다.
현역 군인이었던 박흥주 대령은 단 한 번의 재판 후 3월에 사형이 집행되었고, 나머지 5명은 한 날에 사형에 처해진 것.
유신의 심장을 쏘면 독재가 끝나고 봄이 올 것이라 믿었던 김재규는 "난 오늘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놨다. 이런 자부를 하고 있다. 내가 못 봤다 뿐이지 틀림없이 올 것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또 다른 독재정권이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마음들이 모여 비로소 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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