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자아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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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들의 삶과 교훈이 담긴 경전을 읽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꼭 경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대자연 속에서 시련을 겪으면서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기도 합니다.
결국 도나휴의 깨달음은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듯이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우주의 주재이신 분이 우리의 알몸을 드러내기 전에 자아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고 인생의 사막을 건너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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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들의 삶과 교훈이 담긴 경전을 읽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꼭 경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대자연 속에서 시련을 겪으면서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기도 합니다.
나는 여행의 이력이 넓지 못해 지금도 사막 여행을 할 수 있는 행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사막 여행과 관련된 책을 모아 꾸준히 읽고 있지요. 얼마 전엔 사하라 사막 여행기인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만 빼면,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의 사막에서 헤어나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치유의 오아시스로 들어설 수 있다.”
스티브 도나휴가 여행을 끝낸 후에 남긴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이라는 사막, 변화라는 사막을 건너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몇가지 유익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도나휴는 숱한 장애물이 도사린 사하라 사막을 자동차를 타고 건너다가 모래 속에 차가 빠져 옴짝달싹도 못합니다. 궁지도 이런 궁지가 없지요. 모래 속에 갇힌 차를 빼내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지만 결국 다 실패하고 맙니다. 이때 누군가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타이어의 바람을 빼보면 어떨까요?”
뾰족한 대안이 없던 터라, 도나휴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타이어의 바람을 빼보기로 합니다. 바람을 뺀 후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습니다. 드디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모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지요.
이때의 깨달음은 단지 자동차의 문제만 아니라 소중한 인생의 깨달음으로 연결됩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공기 부족이 아니라 공기 과잉 현상이다. 이처럼 정체된 상황은 바로 우리의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고 차의 높이를 낮춰라. 우리도 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면 현실 세상과 좀더 가까워지고 좀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
결국 도나휴의 깨달음은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듯이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겸허란 우리는 결코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 우리 자신의 약점까지를 포함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런 겸허한 삶의 태도를 통해 변화무쌍한 인생이라는 사막을 헤쳐갈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품을 북적이며 삽니까. 허세·허영·허풍 같은 말은 곧 우리 삶의 거품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런 거품은 언젠가 잦아들기 마련이고, 그렇게 거품이 잦아들면 우리의 벌거벗은 알몸이 드러나고 맙니다.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우주의 주재이신 분이 우리의 알몸을 드러내기 전에 자아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고 인생의 사막을 건너야겠지요.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찬바람에 알몸을 드러내는 나무들을 보며 모처럼 깊은 묵상에 잠겨보는 저녁입니다.
고진하 시인·야생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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