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나는 누구를 불러 저녁을 차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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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갔는데 모든 게 변해 있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사람 이름들이 하나둘씩 기억이 나질 않다가 결국엔 사물의 이름까지도 한꺼번에 씻겨내려져 간 것처럼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그럴 것인가.
그 주변으로 풀벌레들이 모여들면서 마치 환호하듯 춤까지 춰준다면 그 저녁은 얼마나 완벽할 것인가.
여러 이름을 더듬어도 보고 아주 오래전 자주 만나곤 했던 흐릿한 이름들을 하나씩 마음으로 외는 시간은 얼마나 사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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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갔는데 모든 게 변해 있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학교는 폐교되고 뛰놀던 운동장은 무성한 잡풀이 뒤덮고 있으며 멱을 감던 시내는 더이상 물을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얼마나 쓸쓸한가.
지난번 화분에 물을 줬던 날이 기억나질 않음과 동시에 아무리 달래봐도 시름시름 식물의 생명이 회복될 기력이 보이질 않는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사람 이름들이 하나둘씩 기억이 나질 않다가 결국엔 사물의 이름까지도 한꺼번에 씻겨내려져 간 것처럼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그럴 것인가.
그렇지만 이기철 시인의 시에는 따뜻한 기대만이 있다. 식탁에 올려놓은 호젓한 그리움들만이 있다. 저녁이라는 시간대는 세상 많은 것들을 따뜻함으로 치환하려 노력하는 착한 시간임을 이 시는 노래하고 있다. 저녁 공기가 가슴에 차오르면서 우리 마음까지 스며드는 그것의 정체는 정(情)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외국어로 절대 번역할 수 없다는 우리네 그 말, 정.
어느 해 지는 저녁, 동산에 올라 자전거를 세워놓고 하염없이 해지는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소년의 뒷모습 옆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그림자 하나. 그 그림자가 오래 기다려왔던 기다림의 응답이라면 그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 주변으로 풀벌레들이 모여들면서 마치 환호하듯 춤까지 춰준다면 그 저녁은 얼마나 완벽할 것인가.
내 작업실 창가 화분에서 가을 상추가 쑥쑥 자라고 있건만 나는 누구를 불러 상추로 저녁을 차려낼 것인가. 여러 이름을 더듬어도 보고 아주 오래전 자주 만나곤 했던 흐릿한 이름들을 하나씩 마음으로 외는 시간은 얼마나 사무칠 것인가.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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