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린 바지선에 포 싣고 600㎞ 원정훈련… 北은 맘껏 쐈다
文정부, 섬에선 포 사격 못하게 합의
내륙서 쏘는 北은 제한 없이 훈련
군이 9·19 남북 군사합의 때문에 연평도·백령도 등에 배치된 K-9·비궁 등 주요 화기를 사격 훈련이 필요할 때마다 화물선이나 바지선, 트레일러에 옮겨 실으며 경북 포항까지 갔다 오는 등 ‘왕복 1200㎞의 원정 훈련’을 했던 것으로 26일 파악됐다. 반면 2010년 연평도를 포격했던 북한 4군단은 옹진반도 등에서 우리 서해 도서를 겨냥한 포격 훈련을 지난 4년간 100회 넘게 실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재인 정부가 9·19 합의에서 포격 훈련을 할 수 없는 서해 완충 구역을 ‘바다’로 한정해, 우리 군은 발이 묶인 반면 북한 군은 옹진반도 등 내륙에서 포격 훈련을 한 것이다. 백령도 등 서북도서는 서해 완충 구역 안에 있어 포를 전혀 쏠 수 없다.
본지가 서북도서 부대의 사격 훈련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 우리 군은 연평도·백령도 등에 배치된 화기를 옮겨 훈련하느라 지난 4년간 130여억원의 국방비를 추가 지출했다. 서북도서를 관할하는 해병대는 9·19 합의 이전인 2017년까지 K-9자주포, 천무(다연장 로켓) 등 주요 화력 무기 사격 연습을 현지에서 실시했다. K-9의 경우 연 4회 꾸준히 해상 사격 훈련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북한과 9·19 합의를 체결하면서 서북도서의 사격 훈련은 전면 중단됐다. 당시 정부가 북한 요구를 대폭 수용해 “북방한계선(NLL) 기준 이북 50km·이남 85km인 초도~덕적도 수역에서 포 사격을 중지하고 해안포·함포에 포신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도 폐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병대는 K-9 사격 훈련 횟수를 기존 연 4회에서 2회로 줄이는 등 최소화했다. 훈련을 하더라도 현지서 화기를 빼내 시중에서 빌린 바지선에 싣고 바다 건너 경기 연천이나 멀게는 경북 포항까지 나와야 했다.
특히 북한의 백령도 침투 저지용인 유도 로켓 비궁이나 이스라엘 대전차 미사일 스파이크는 직선거리로만 460km, 이동 거리로는 600km가 넘는 해병대 포항 사격장까지 옮겨야 했다. 화기가 육지로 철수됐을 때 생긴 전력 공백은 김포·포항 등에 있는 것들로 대체 투입해 메웠다. 화기·병력 이동 시 안전 문제 등도 발생했다.
◇北 황해도서 백령도 겨냥 100회 넘게 포 사격 훈련
반면, 북한은 옹진반도 등 내륙에서 9·19 합의 영향을 받지 않고 포격 훈련을 했다. 특히 북한 4군단은 지난 4년간 100회 넘게 우리 서북도서와 인천·경기 수도권을 겨냥한 포격 훈련을 실시했다. 4군단은 다수 보병사단과 포병여단 등으로 편성됐는데, 240mm 방사포를 비롯해 다수의 야포·해안포로 무장돼 있다. 2010년 고(故) 서정우 하사 등 총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도 4군단 소행이었다. 북한은 도서 지역 바로 뒤에 병풍처럼 쳐져 있는 황해도 해안을 적극 활용해 언제든 제2의 연평 포격을 감행할 태세를 유지해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 협상팀이 9·19 협상을 할 때 서해 완충 구역을 ‘바다’로만 한정해 한국군에만 더 많은 ‘족쇄’를 채우는 불리한 결과를 만든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북한은 9·19 합의 체결 1년여밖에 되지 않은 2019년 11월 완충 수역으로 포격을 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서해에서만 총 8차례 합의를 위반하며 해안포 사격을 했다. 북한의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포함하면 9·19 위반 총 횟수는 18차례인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황해도 반도 지형을 활용해 연평도 등 우리 서북도서를 겨냥한 포격이었던 것이다.
군 안팎에선 9·19 협상이 작전 계획, 군사 보안 등 적법한 절차와 검토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합참과 해병대에서 북측 요구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냈는데도 사실상 북측 요구가 거의 그대로 합의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야당은 9·19합의로 서해가 평화수역이 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서북도서의 방위태세가 취약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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