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팔레스타인 정부가 ‘배신자’다

김지원 기자 2023. 10.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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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수반./EPA 연합뉴스

지난 24일 본지 1면에는 히잡을 쓴 여성 사진이 등장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사는 24세 팔레스타인 여성 파팀. ‘평범한 팔레스타인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취지 아래 소셜미디어를 뒤진 끝에 인터뷰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꼬박 하루가 지나고 “영어를 잘 못 하지만 어떻게든 번역기를 써서 해보겠다”는 답이 왔다. 아랍어와 영어가 뒤섞인 문답을 주고받는 내내 그는 침착하고 분명했다. 그러나 딱 한 순간,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8년 전 오빠가 이스라엘군에 죽임을 당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관해 온 팔레스타인 정부는 배신자(traitor)다.”

파팀뿐만 아니라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은 이스라엘만큼이나 팔레스타인 정부에 치를 떤다. 그들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가자지구·서안지구의 자치권을 넘겨받았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스라엘과의 분쟁에 지친 팔레스타인인들은 평화적 외교를 통해 팔레스타인만의 국가를 세우려는 정부에 희망을 걸었다. 비록 이스라엘에 둘러싸인 제한된 구역일지라도 처음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 희망을 황망히 저버렸다. 초기 정부를 이끌었던 야세르 아라파트, 후임자인 마무드 아바스와 집권당 파타는 부정부패와 무능의 상징이 됐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수억 달러 원조금은 서민의 빈곤과 실업 해결에 쓰이지 못한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2005년 아바스는 4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18년째 집권하며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여기에 서안지구 내 극우 이스라엘 정착민·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자행하는 폭력에도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대중의 분노를 키웠다.

자치 정부를 향한 실망은 결국 하마스의 득세로 이어졌다.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주장해 온 하마스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가 사람들의 신임을 잃는 순간을 노렸다. 2006년 치러진 총선에서 하마스는 132석 중 74석을 확보해 파타에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파타는 총선 패배에 불복했고, 이는 이듬해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요새화하고, 이란의 무기·자금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과 무력 분쟁을 벌여왔다. 이는 끝내 지난 7일 이스라엘 민간인을 납치·살해하고 그 보복으로 가자지구 주민 수천 명도 목숨을 잃는 잔혹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민주주의 원칙 아래 국가 기반을 다지고 해외 원조금을 경제 발전과 민생 구제에 썼다면, 국민은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먹고 자란 하마스가 설 자리도, 오늘의 비극도 없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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