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전쟁과 탈리오 법칙
선량한 민간인만 피해…평화·화해 언제 이루나
이동현 평택대 총장
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86세에 이집트 여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고, 100세에 본처 사라에게서 둘째 아들 이삭을 얻는다. 팔레스타인과 같은 아랍인은 이스마엘의 후손이고,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유대인은 이삭의 후손이다. 매우 단순화하면 유대인과 아랍인은 아버지는 같되,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전쟁은 가족 또는 친족 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는 사라의 말을 따르라고 하면서,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동시에 ‘이스마엘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약속하고, 이어서 광야로 쫓겨난 하갈에게 ‘이스마엘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재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자손은 장구한 역사 속에서 성장과 고난을 반복하며 오늘날 중동 땅에서 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아랍인의 인구는 4억 명 가까이 이르고, 유대인은 세계 134개 국가에서 약 1500만 명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유대인의 역사는 다이내믹하다. 나치 독일의 탄압을 받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1945년 기준 약 600만 명이 살해당한 것만 봐도 어떤 역정을 거쳐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학살과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 세계의 이목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공격에 쏠린다.
전쟁은 인류가 등장한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미국의 문명사학자인 듀런트 부부에 따르면 인류 문명사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68년이라고 한다. 전쟁이 없는 시기가 극히 단기라는 점에서 인류는 전쟁과 함께 생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 일상이고, 평화가 예외라는 것이다. 전쟁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체로 인종 종교 경제 이데올로기 등 4가지 요소가 단일 또는 복합 요인으로 작용해 일어난다고 한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발칸전쟁 등이 인종을 둘러싼 것이다. 흑인 히스패닉 유대인을 죽여 백인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인종청소’라는 인터넷 게임까지 있다. 종교전쟁으로는 십자군 전쟁과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등이 있고,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결이다. 경제적 원인에 의한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포함해 대부분의 전쟁에서 발견된다.
전쟁을 연상시키는 용어는 일상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한일전’이라고 하고, 남과 북이 경기를 하면 ‘남북대결’이라고 한다. 일상대화에서도 TV 프로그램에서도 ‘전쟁’이란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한국 정치에서도 벌어지는 행태는 전쟁의 양태와 거의 흡사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일상이 전쟁이다.
문제는 전쟁의 피해자들이 그들이 당하던 학살 방식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데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내세우며 기습공격을 하고, 유대인 시민을 학살하고 인질로 잡는다. 이어서 네타냐후가 가공할 공격을 통해 어린아이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시민을 사살한다. 보복의 악순환이다. 탄압받을 때의 가해자가 하는 악행은 보복하는 자에게는 선행이 된다. 악행과 선행의 구분이 없어지고, 반복되며 강화될 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이 요즘은 천배, 만배 복수로까지 확장한다. 복수의 순환고리에 걸리게 되면 눈이 빠지고 이빨이 없어지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일부 이스라엘 극우 의원들이 주장하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사용해 야만의 땅 가자지구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일원이 자행하는 자살폭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문자 또는 사진으로 본 전쟁과 학살의 현장을 지금은 TV와 동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전쟁의 폐해는 오롯이 선량한 시민에게 돌아간다. 그들에게 전쟁은 참혹한 희생에 불과하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이 평화와 화해에 이바지하지 않고, 핵무기 등 전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인류 종말로 끝장날 수도 있다.
탈리오 법칙이 무차별적으로 행사되던 집단적 복수를 가해자 개인에 대한 복수로 한정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비례성과 형평성에 기초해 당한 만큼만 갚고, 부모형제를 포함해 부족 간 복수전쟁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갖다 대라”는 나사렛 예수의 산상수훈은 오늘날 복수의 악순환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평화와 화해를 향한 원칙이 아닐 수 없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복수와 보복을 중단하고 평화와 번영을 이룰 날이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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