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추락하는 영재를 위한 변명
스무 살 언저리 선수를 인터뷰하는 건 늘 어렵다. 대부분 대답이 짧기 때문이다. 모든 답이 ‘예’ 또는 ‘아닌데요’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제가 말한 것과 비슷한 생각이신 거죠?’라고 되묻는다. ‘예’라면 다행이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라고 한 뒤 또 묵묵부답. 결국 이렇다 할 이야기를 못 듣고 기사 분량을 걱정하며 터덜터덜 돌아올 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어린 선수에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거침없이 나오는 마음의 소리. 언젠가는 자주 사용하는 기술을 어떻게 연마했는지를 물었는데, ‘그냥 하니까 되던데요’라면서 흐흐 웃는 선수가 있었다. 몸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솔직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대답은 어른들에게선 들을 수 없다.
일찍 스타덤에 오른 10대들도 비슷하다. 처음부터 달변인 선수는 많지 않다. 말뿐 아니라 생각도 아직 덜 다듬어졌을 나이다. 그러나 기대에 찬 대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행동 하나하나에 환호하고, 모든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어느샌가 스포츠 스타를 응원하는 게 아이돌 팬덤 문화처럼 변했다.
문제는 어린 선수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다. 프로축구 수원FC에서 뛰는 이승우가 그랬다. 이승우는 13세에 스페인으로 건너가 명문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합류하며 촉망을 받았다. 그의 경제적 가치가 2000억원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온갖 조롱이 쏟아졌다. 그에게 걸렸던 기대에 대한 반작용 같았다. 이승우는 “어렸을 때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제가 제 자신을 잘 아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5세의 선수가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는 많은 밤이 필요했을 것이다.
추락하는 영재들에겐 날개가 없다. 생후 41개월에 일차방정식 문제를 풀던 백강현군은 만 10세에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다가 6개월 만에 자퇴했다. 그러자 ‘사교육으로 만들어졌다’는 뜬소문부터 ‘아무것도 못 하는 X신’이라는 원색적 비난이 어린 소년에게 쏟아졌다. 네 살 때 아이큐가 210이었다던 김웅용, 인하대학교를 8세에 입학했던 송유근 등. 그들이 정말 천재였는지 이젠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넘실댔던 비난들이었다.
척박한 땅인데도 피우는 꽃이 있는가 하면, 비옥한 토양에서 더 예쁘게 피어나는 꽃도 있다. 그렇다면 지지대를 세워주고 병충해를 잡아주는 등 활짝 필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마치 천재가 질타를 받는 게 숙명인 것처럼 거리낌이 없다. 프로 스카우터들은 정반대의 의미로 그들의 실패를 기다린다. “유망주들이 잘할 때는 크게 관심이 없다. 가장 집중해야 할 때는 실수가 한두 번 나왔을 때다. 그 실수를 금방 고쳐내는 아이를 찾는다. 그런 선수는 크게 된다”고 했다. 잘못을 해야만 더 좋은 선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지인 데다, 천연자원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단연 우수한 인적 자원 덕분이었다. 한국의 인재는 언제나 부박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자라나고 있다. 지금 필랑 말랑한 꽃봉오리들에게 필요한 건 삐끗했을 때에도 기다려주는 대중의 관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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