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세계유산에 대한 오해 풀기

강동진 경성대 교수 2023. 10.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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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경성대 교수

부산 중구 곳곳에 현수막이 붙었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한다는 주장이다. 세계유산은 지역민이 반대하면 절대 등재될 수 없다. 2016년부터 추진되어 이제 잠정목록(2023년 5월 16일 공식등재)에 올랐는데 지역민이 반대한다니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지역의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방문객이 몰려들어 지역 경제에 활력이 붙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다. 그런데 부산의 지역민은 왜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걸까? 주장 속에는 여러 오해들이 스며있다. 자격 없는 사람이지만, 그 오해에 변을 하려 한다. 죄 없는 세계유산 제도를 흠집 내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오해는 110여 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올 제1부두의 미래에 대한 시각차에서 시작된다. 제1부두의 개발 논쟁이 세계유산 등재가 강력한 규제를 몰고 와 지역개발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로 와전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유산의 ‘탁월하고도 보편적인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이하 OUV)’의 증명을 전제로 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 OUV를 훼손시키거나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개발은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유산 외곽에 완충구역이라는 보호 장치를 조건으로 한다. 2021년 영국 리버풀의 세계유산 취소 이유가 바로 완충구역 내에 추진된 대형개발들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완충구역 바깥의 개발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는 개발로 인해 해당 유산의 OUV가 훼손될 때 작동된다. 조선왕릉 경우가 그랬다. 조선왕릉은 왕릉 입지와 관계된 풍수지리의 원리가 OUV에 포함되어 있는데 조망과 관련된 이 원리가 훼손됨으로써 발생한 문제였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OUV는 이렇게 정의된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은 20세기 냉전기 최초 전쟁인 한국전쟁기의 급박한 상황 하에서 1023일 동안의 피란수도 기능 유지를 보여주는 특출한 증거물이다. 신청 유산은 9개의 연속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피란수도의 정부유지, 피란 생활, 국제협력의 기능을 설명한다.” 신청 유산 9개는 점적으로 분포하는 시설이다. 유산들의 완충구역은 문화재보호법에서 적용받는 원래의 보호구역을 준용하거나, 주변 개발을 추가로 규제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다. 세계유산 때문에 주변 개발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는 오류가 있는 것이다. 세계유산의 핵심은 유산의 OUV다. 이것을 훼손하는 개발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구청에서는 9개 유산 중 핵심의 유산인 제1부두에 복합시설 건설을 주장한다. 그래야만 중구가 발전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 행위는 제1부두의 OUV 훼손과 직결된다. 개발과 동시에 세계유산은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논점이 대두된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된 부산시의 역할론이다. 유산 등재에 있어 유네스코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단계가 되면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그 단계의 이전까지는 해당 지자체가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잠정목록에 오르면 지자체에서는 세계유산센터(또는 추진단)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수년 동안의 준비를 본격화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다. 부산시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예를 든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16건의 세계유산 모두는 국가 사적과 천연기념물 이상의 등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산의 경우 대다수가 지방문화재이거나 등록문화재다. 제1부두는 아예 아무것도 아니다. 부산시가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등급 올리는 일에 힘을 다해도 부족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등재를 반대하는 지역민의 요구에 상응하는 다양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부산시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멀찍이서 쳐다만 보고 있다.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지역민은 소통할 주체를 찾지 못해 공허한 외침과 오해만이 난무하는 것이다.

부산시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부산시도 제1부두의 개발을 진짜 원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7년 만에 잠정목록에 오른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등재 추진을 포기하자는 것과 같은 얘기다. 이것이 부산시의 진정한 의도인가? 세계유산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니, 등재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7년여 동안 수많은 국민이 ‘1023일 동안의 피란수도 부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했고, 이에 따라 부산의 정체성이 크게 확장된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앞으로의 등재 과정도 분명 다양한 측면에서 부산의 시격(市格)을 높이는 일에 놀랍도록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2030부산월드엑스포의 주제가 바로 피란수도를 중심으로 한 부산의 역사와 깊게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 그것도 부산항에서 엑스포를 개최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빈 땅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존립과 도약의 바탕이 되었던 부산의 위대한 역할을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부산시가 전력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절대 부산과 지역민에, 그리고 후손들에 손해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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