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3] 숲을 배경으로 자태를 뽐내는 이집트 신전
얼마 전까지 여름 같았는데 순식간에 가을로 변했다. 짙은 녹색 나무들이 급작스럽게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변모하는 요즈음이다. 단풍이 세상을 뒤덮을 때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1989년에 나온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다. 빌리 크리스털과 멕 라이언이 주연한 이 영화는 ‘남녀가 연인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진부하면서도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뉴욕의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티격태격하던 그들은 10년 시간 속에서 결국 친구에서 연인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남녀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지만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잘 만든 영화다. 기억나는 장면은 10년 만에 만난 해리와 샐리가 늦가을의 화려한 단풍으로 가득 찬 뉴욕 센트럴파크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대화하는 장면이다. 특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덴두르 신전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과 건너편에 보이는 단풍 장면이 인상 깊었다.
가을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초여름에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시간을 쪼개 ‘해리’와 ‘샐리’의 여정을 좇는다.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헤어질 때 배경이 된 ‘워싱턴 스퀘어’, 여성의 가짜 ‘절정’을 시연하는 음식점 ‘카츠’ 등 뉴욕의 구석구석을 영화를 떠올리며 돌아다녔다. 드디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까지 왔다. 신전이 있는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의 감동이란. 덴두르 신전은 기원전 10년, 고대 이집트 남부인 누비아 지역에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 이시스 여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아담한 신전이다. 박물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른바 유럽 박물관처럼 제국주의 시대의 약탈품은 아니다. 1960년대 아스완 댐 건설로 수몰 예정 유적 중 하나인 이 신전을 이집트 정부가 1965년 미국에 선물한 것이다. 신전은 이집트의 메마른 땅 위, 나부끼는 모래바람 속의 근엄한 분위기가 아닌, 뉴욕 박물관의 탁 트인 유리벽 건너, 공원의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색다른 느낌이다.
울긋불긋한 단풍 거리를 걸으면서 영화와 그 영화 속 신전이 어우러진 멋진 장면을 떠올린다. 삶을 풍성하게 하는 문화 예술 작품이 주는 미덕일 게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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