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중성자 공장? 그 활용과 수출

주한규 원자력연구원장

전기차의 유용성은 배터리 성능에 큰 영향을 받는다. 배터리 충전이 빠르고 한 번 충전에 500㎞ 이상 주행하며 수명이 더 늘고 가격마저 싸진다면 전기차 수요는 급증할 것이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은 양극재의 조성과 품질에 좌우된다. 하이니켈 양극재는 니켈함량 증대를 통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니켈이 포함된 양극재 나노물질 제조과정에서 니켈이 많아질수록 미세결함이 더 생기는데 이 결함을 최소화해야 충분한 성능과 수명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중성자를 이용해 결함의 양과 분포를 분석함으로써 하이니켈 양극재를 안정화하고 수명을 10% 늘리는 제조공정이 개발됐다.

원자로에는 발전용 원자로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기술 탐구를 위한 연구로도 있다. 연구로에선 우라늄의 핵분열 과정에서 잉여로 생성되는 중성자를 다음 연쇄 핵반응에 다 쓰지 않고 남겨 다른 용도로 쓰기 때문에 연구로를 중성자공장이라 할 수 있다. 핵반응에서 나온 고에너지 중성자는 원자로 내 물속을 지나면서 에너지가 낮아진다. 이런 저에너지 중성자를 특수 저온장치인 액체수소에 통과시키면 냉중성자라는 극저에너지 중성자가 된다. 냉중성자는 가벼운 원자핵으로 구성된 나노물질이나 수소가 포함된 화합물의 구조분석에 탁월하다. 엑스레이나 전자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물질의 내부구조를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중성자는 이차전지, 양자컴퓨터용 양자물질, 고분자 화합물을 포함하는 신약 등의 개발에 많이 활용된다. 냉중성자보다 에너지가 높은 저에너지 중성자는 연료전지 내 수분 거동 등의 영상분석에 사용된다.

중성자공장에서 생성되는 중성자는 표적물질에 쪼여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데도 이용된다. 의료용 동위원소는 CT 같은 영상장치를 통한 암진단뿐만 아니라 암의 치료에도 사용된다. 대표적 암치료제는 소아암 치료제 mIBG와 전립선암 치료제 루테튬 177이다. 한편 중성자를 실리콘 단결정에 쪼이면 고품질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고품질 반도체는 전기자동차나 풍력발전기에 쓰이는 대용량 전력반도체 제조의 필수품이다. 이처럼 중성자는 보건의료와 첨단산업 분야에 많이 활용되며 우리 생활에 큰 유익을 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중성자공장은 대전에 있는 하나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85년부터 30㎿(메가와트)급 원자로인 하나로 독자개발에 착수해 1995년 완공하고 냉중성자 장치 등 부대 실험시설을 추가해 그 유용성을 확대해왔다. 하나로는 국내 소아암 치료용 mIBG 수요 전량공급, 현대자동차의 수소연료전지 개발, 이차전지 양극재 개발, 전고체 전지 개발, 정밀기계부품 검사, 세계 전력반도체의 10% 생산 등으로 높은 활용성을 자랑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하나로 설계·운영기술을 바탕으로 2009년 요르단의 5㎿급 연구로인 JRTR 건설사업을 수주해 2016년 완공함으로써 원자로 첫 수출을 기록했다. JRTR는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가동됐다. 이러한 연구로 개발의 성공을 바탕으로 부산 기장에는 15㎿급의 동위원소 생산용 연구로 건설이 진행 중이다. 기장 연구로 역시 국내 독자기술로 설계됐다. 반면 원자로 선도국 미국에서는 수십 년간 연구로 건설이 없었다. 지난달 미주리대학에서는 구형 연구로를 대체할 20㎿급 연구로 MURR 건설 설계사업 입찰에 참여할 5개 기관을 선정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USNC 컨소시엄이 여기에 포함됐다. 내년 초까지 진행될 MURR 사업자 선정과정에는 4개 기관과의 치열한 경쟁이 남아 있다. 우리 컨소시엄이 선정된다면 1959년 미국에서 트리가 마크Ⅱ 연구로를 수입한 지 65년 만에 역수출하게 된다는 큰 의미가 있다. 또 한 번의 연구로 수출이 성사되길 고대한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