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이태원 유가족 대표, 모든 것이 무너진 이후의 계획
계획대로라면 2023년 시작했어야 했다. 2020년 퇴직한 뒤 자신만의 사업을 준비했다. 2023년엔 본격적으로 시작할 터였다. 딸의 결혼식도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2023년 9월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다. 그러나 ‘계획’과 ‘예정’은 실현되지 못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2022년, 그 일이 일어났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정민(61)씨의 모든 계획은 10월29일 무너졌다.
이씨의 딸 고 이주영(당시 28살)씨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돌아오지 못했다.(‘운동도 사업도 도전적이었던, 솔직당당한 ‘가족의 대장’’, 제1449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씨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겨레21>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이씨를 만났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의 계획이 무너진 자리엔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 등 생소한 단어들이 들어섰다.
어머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손녀의 죽음
2023년 9월25일 오후 서울시청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에 이씨가 섰다. 정돈되지 않은 수염이 얼굴을 덮었다. 틈날 때면 찾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106명의 영정사진이 놓인 그곳에서 그는 매일 똑같은 말을 되뇐다. ‘얘들아 나 왔어. 오늘도 힘을 다오.’
약 10개월 전인 2022년 12월,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맨 앞에 섰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출범을 알리는 자리였다. 고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가 대표를, 이씨가 부대표를 맡았다. 그는 결코 나서고 싶지 않았다. 미처 어머니에게 손녀의 부고도 알리지 못했다. 나서면 어머니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유가족협의회 1기 대표를 맡은 이종철씨도 마찬가지였다.(이태원 참사 유족 대표 “살고 싶은데, 손 내미는 사람이 없다”, 제1446호)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처음엔) 나서지 않겠다고 계속 말했어요. 사실 당시에 모든 분이 그랬어요. 일반 시민이잖아요. 소시민들이잖아요.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대표를 서포트하는 역할만 하겠다는 약속으로 부대표를 하게 됐어요.”(이정민씨)
막상 일하다보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숨어서 지원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부대표를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에게 말했다. “계속 (부대표를) 하려면 나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 같아.” 가족들은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해야지.” 주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가족은 답해줬다.
이씨의 어머니가 어느 날 뉴스에서 아들이 나오는 장면을 봤다. 그때 가족들 전부가 나서서 강하게 부인했다. “그럴 리 있겠느냐, 왜 뉴스에 나오겠느냐” “굉장히 많이 닮긴 했다”는 말로 넘겼다. 이씨의 어머니는 손녀가 아직도 외국에 나가 있는 줄 안다. 어머니만 제외하고 모든 가족의 지지를 받은 이씨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 이 다짐이 2023년의 새로운 계획이 됐다.
부대표였던 이씨가 유가족협의회 전면에 나선 것은 2023년 4월부터다.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이종철 대표에게 건강 문제가 생기면서 어느 순간 ‘대표 직무대행’이 됐다. 수사기관의 ‘꼬리자르기식 수사’와 ‘반쪽자리 국정조사’를 거치며 그즈음 유가족들에게 남은 것은 ‘특별법'이었다. 전국을 돌며 서명을 받아 국회에 청원을 냈다.
그러나 이후 진전이 없었다. 유가족들은 6월7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고, 릴레이 행진도 시작했다. 6월20일부터는 이씨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가 단식에 돌입했다. “곡기를 끊는다는 것은 제 모든 행동과 삶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국회에서의 법안 처리를 촉구하면서 끝없이 그 고통을 감내하겠습니다. 신속한 법안 처리로 우리의 고통도 끊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유가족 단식농성 시작 기자회견에서)
무작정 시작했지만, 단식이 뭔지도 몰랐다. 주변에선 준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씨는 급한 마음에 일단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단식이란 건 뉴스에서나 봤지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요. 주변에서 단식을 하려면 준비해야 한대요. 그런 상식도 없이 그냥 절실한 마음에 ‘오늘부터 해야 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등 유의미한 진전이 있을 때까지 단식을 지속하겠다고 밝혔기에, 혹시라도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지 않을 경우 단식이 기약 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각오는 단단히 했지만 단식에 돌입하니 “굉장히 힘들었”다. 당시 이씨는 국회 앞 천막 아래서 농성했는데,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주변 소음과 싸워야 했다. 국회의원들이 천막을 찾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말하기도 힘에 부쳐서다. 그렇지만 입을 다물 순 없었다. 한마디라도 더 호소해야 했다.
용기를 얻은 그날
그렇게 11일째 되던 날, 이씨는 긴장된 마음으로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입에 시선이 몰렸다. “특별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 지정 동의의 건은 총투표수 185표 중 가 184표, 부 1표로써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씨는 고개를 숙였다. 유가족들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만이 끊긴 말을 이어나갔다. 본회의장을 나선 뒤에야 서로 짧은 마디를 건넸다. “수고했어.” 이씨는 참사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이 순간을 꼽았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너무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우리 힘으로 뭔가를 해낸 거잖아요. 자신감도 생겼고 용기도 얻었고, 굉장히 큰 힘이 됐어요.”
이씨에게 이번 특별법이 중요한 이유는 유가족들이 가장 바랐던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어서다. 참사 이후 특별수사본부를 비롯한 수사기관의 수사는 유가족들의 의문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어떤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고 책임지고 물러나지도 않았다. 이임재 전 서울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구속 기소됐지만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검찰에 송치된 이후 답보 상태다. 유가족들은 수사도, 재판도 믿지 못한다.
“재판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봐요. 구속된 사람들 다 보석으로 풀려났잖아요. 구속 기한이 6개월인데 사실 그 안에 1심 판결이 났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시간이 이렇게까지 많이 걸리는 것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수사는) 실무자들조차 구속을 못 시키는데 윗선은 말할 필요도 없죠. 대검찰청에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깔아뭉개고 있고요. 왜 그러냐 물어보면 ‘외국에 사례가 없다’고 해요. 이런 이유를 종합해보면 ‘반포기' 상태가 된 거죠.”
유가족과 생존자 등 피해자 지원도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심리지원은 대부분 유가족이 만족하지 못했다. 또 정작 유가족들이 원하는 공간은 제공되지 않았다.(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 함께 울 공간, 제1458호) “심리상담은 우리가 다 거부했어요. 더 화만 돋우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아무 소용 없다고 이야기했고요. 오히려 소통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했거든요. 그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데….”
보라색 리본을 만드는 이유
특별법은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내용과 피해자 구제 및 지원에 관한 내용이 핵심이다. 특조위는 애초 여야와 유족들이 추천한 위원들이 다시 조사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이었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거치면서 수정됐다. 추천위를 별도로 두지 않고 여야가 각각 4명, 유가족이 2명, 국회의장이 1명씩 조사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국무총리 산하에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추모공원과 기념관 설립 지원 등에 대한 조항도 담았다.
다만 아직 통과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 특별법은 8월31일 국회 행안위를 통과했다. 이후 최장 90일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된다. 90일을 온전히 법사위에서 보낸다면, 특별법은 이르면 2023년 12월, 늦어도 2024년 1월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다만 본회의에서 통과된다고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씨는 “제가 처음 시작부터 계속 달려왔는데, 제 임무는 특별법 통과까지라고 생각한다”며 “이후 특조위가 구성돼 조사를 원활하게 하고 이런 것은 자연스럽게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것이 눈앞의 목표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모여 목소리를 내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2023년 하반기 이씨의 구체적인 계획이 됐다. 이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집에서, 분향소 앞에서, 차에서 보라색 리본을 만든다. 마치 보라색 리본을 많이 만들수록 유가족 편이 많아진다는 듯이. 유가족들은 1주기 행사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민들에게 리본을 나눌 계획이다.
1주기를 맞아 꺼내고 싶은 말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서가 아닌, 주영의 아버지로서 계획도 있다. 매주 일요일, 이씨는 가족들과 함께 주영이 있는 추모공원에 간다. 결혼을 약속했던 딸의 남자친구도 같이 간다. 함께 추모공원을 다녀와서 밥을 먹고 헤어지는 게 새로운 일상이 됐다. 이씨 부부는 2023년 1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친구가) 딱 1년만 슬퍼하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딸을 잊고 살아줬으면 좋겠다.”
이씨의 생각은 달라졌을까. “처음에는 개인적으로는 빨리 털어내고 자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그건 제 생각과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납골당도 같이 가고 자연스럽게 하다보니 이 친구도 치유가 되더라고요. 이제는 밀어내려고 재촉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다만 우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뭔가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1주기가 지나면, 그는 이 이야기를 꺼낼 계획이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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