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묶여있던 ‘학문의 자유’ 풀려났다... 대법,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무죄

유석재 기자 2023. 10. 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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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박유하 교수가 서울 대법원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은 2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던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학문적 주장은 명예훼손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확인했다.

대법원은 “박 교수의 표현은 조선인 위안부 전체에 대한 종합적 해석이나 평가로서 학문적 주장이나 의견의 표명”이라며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판시했다. 박 교수의 무죄는 향후 서울고법에서 진행될 파기 환송 재판에서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그래픽=이지원

◇대법 “명예훼손 처벌 대상 아니다”

박 교수는 2017년 1월 1심에서 무죄를, 같은 해 10월 2심에서는 유죄(벌금 1000만원)를 선고받았다. 2심은 ‘강제 연행이라는 국가 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공적으로) 행해진 적은 없다’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등 11개 표현이 허위 사실이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은 2심 유죄로 본 표현들에 대한 판단을 내놨다. ‘공적 강제 연행’ 부분과 관련해 대법원은 “국가나 군 차원에서 어느 정도 개입이 존재해야 이를 ‘공적 강제 연행’으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가능하다”면서 “박 교수 주장이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 관습에 비춰 용인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저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표현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오히려 박 교수는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이며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 제국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상황에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혔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박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제국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니 전자에만 주목해 한일 갈등을 키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해당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이날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에 국민의 사상을 보장하는 자유가 있는지에 관한 판결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거나 위안부 할머니를 기만한 적이 없다”며 “고발당한 이후 9년 4개월 동안 제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고도 했다.

◇2014년 시작된 법정 공방

‘제국의 위안부’가 처음 출간된 것은 2013년 8월이었다. 이 책은 ▲위안부의 불행을 낳은 것은 식민 지배,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라는 복잡한 구조였다 ▲20만명이 강제로 위안부가 됐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등의 주장을 담았다. ‘위안부 문제를 보는 폭넓은 시각을 제시했다’는 호평과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경시하는 잘못된 논점을 담았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지만 학문적 논의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2014년 6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이 자신들을 ‘자발적 매춘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등으로 매도했다며 박 교수에 대한 민형사 고소에 나서면서 책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법원은 이들이 낸 출판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해 “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 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위안’은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 등 문장 34개를 삭제해서 출판하도록 했다.

◇국내 학계, 옹호와 비판으로 나뉘어

2015년 11월 검찰이 박 교수를 기소하자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고노 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의 진보적 인사들은 “제국 일본의 근원적인 책임을 지적했을 뿐”이라며 박 교수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 학계는 옹호론과 비판론으로 나뉘었다. 2015년 12월 2일 김병익 전 문화예술위원장, 문정인·정과리 연세대 교수 등 190여 명은 “검찰 측의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춰볼 때 타당하지 않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같은 날 정진성·양현아 서울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등 60명은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며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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