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지상전 돌입 수순?…가자 북부 탱크·보병 기습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진입을 다시 한 번 예고한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밤사이 가자 북부를 전차(탱크)와 보병을 투입해 급습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지상전 전면 전개 수순에 돌입한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이스라엘군은 26일(이하 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투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가자 북부에서 작전을 벌였다"며 "전차와 보병대를 가자 북부에 투입해 수많은 테러 조직, 기반 시설, 대전차 미사일 발사대를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군이 언급한 "전투의 다음 단계"가 전면적 지상 공격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이스라엘군은 "이후 군인들은 해당 지역을 떠나 이스라엘 영토로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군 라디오 방송이 간밤 지상군 침입 규모가 이번 전쟁 기간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이 함께 공개한 영상엔 장갑차가 국경 지대를 통과하는 모습, 불도저가 땅을 고르는 모습, 폭발 장면 및 작전 당시 상황실 모습 등이 담겼다.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이 예고해 온 가자 지상 공격의 시발점인지와 관련, 25일 네타냐후 총리는 성명을 내 "우리는 지상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기, 방법, 규모"는 "군인들의 생명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연설에서 지난 7일 발생한 "실패"에 대해 "나 자신을 포함"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승리를 위해 단결해야 할 때"라며 모든 조사는 "전쟁이 끝난 뒤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7일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급습해 1400명 이상이 죽고 220명 이상이 인질로 붙잡혔다.
영국 스카이뉴스 방송의 중동 특파원 알리스테어 번컬은 이번 지상 침입을 "예상되는 전면 침공에 앞서 지상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봤다. 지뢰 매설 여부, 하마스의 반응 등을 살피며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에 대한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2일부터 제한적 가자 지상 작전을 벌여 왔다.
다만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작전이 "지상전 전개 시기에 대한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방송은 이스라엘이 사기 저하를 방지하고 국내에 반격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또 하마스를 압박하기 위해 지상전이 임박했다는 느낌을 계속 주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전개하더라도 하마스 궤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가자지구에 구축된 지하 터널 네트워크가 시가전에서 하마스의 기습 공격 및 방어를 동시에 용이하게 하는 데다 터널에 인질까지 붙들려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 급증을 우려하는 가운데 인구 밀도가 높은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피해가 불보듯 뻔한 지상 작전을 펼치는 것 또한 이스라엘에 부담이다. 지난 13일 가자 북부 주민들에 남부 대피령을 내리며 임박한 것으로 보였던 이스라엘군의 지상 작전이 지연되는 배경엔 이같은 어려움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짚었다.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 절반 이상이 외국 국적 보유자라는 점도 부담이다. 전문가들이 협상이 아닌 군사 작전으로 인질을 구해낼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지상 작전이 늦춰지길 바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에 따르면 25일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억류한 220명 가량의 인질 중 절반이 넘는 138명이 외국 국적자라고 밝혔다. 태국인이 54명으로 가장 많고 아르헨티나인 15명, 독일인 12명, 미국인 12명, 프랑스인 6명, 러시아인 6명 등이 포함됐다. 이 중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 국적 또한 보유하고 있는 이중 국적자다. 태국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이주 노동력 공급국 중 하나로 3만 명에 달하는 태국인들이 이스라엘 농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 CNN 방송 등 미국 언론은 미 정부가 인질 협상을 위한 시간을 벌고자 이스라엘에 지상군 투입을 늦추라고 권고했다고 당국자 등을 인용해 보도했는데, 미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5일 인질 석방을 위한 지상 침공 보류를 네타냐후 총리에 요구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며 "그것은 그들(이스라엘)의 결정이고 나는 요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상전 지연과 관련해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수용 가능한 손실과 구체적 목표 등 보다 명확한 지시를 원하는 군 지도부와 "하마스 퇴치"라는 큰 틀 이상의 것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 지도부 간 혼선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로이터>는 지난주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이번 전쟁이 끝난 뒤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구상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중동 및 서방 당국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무너뜨린 뒤 "출구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하마스 침략 전인 "10월 6일 이전 상태로 복귀는 없을 것"이라며 분쟁 종료 이후의 구상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그는 "우리 관점에서 이는 두 국가 해법"이라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 파트너, 세계 지도자 등 모든 당사자들이 평화를 향한 길로 나아가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국가 해법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의 국가를 설립하는 방안이다.
가자 사망자 6500명 넘어…바이든, 팔레스타인 집계 사상자 수에 의구심 표명
25일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저녁 6시 기준 24시간 동안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가자지구 사망자 수는 756명으로 이번 분쟁 시작 뒤 일일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다. 이 중 절반 가까운 344명이 어린이다. 분쟁이 시작된 지난 7일 이후 가자 총 사망자 수는 6547명, 부상자 수는 1만7439명으로 늘었다.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25일 이스라엘군의 제닌 난민촌 수색 작전 중 15살과 17살 소년 2명이 사망한 것을 포함해 7명이 목숨을 잃으며 7일 이후 102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군 및 불법 정착민 폭력에 의해 숨졌다.
<로이터>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족이 폭격으로 사망했을 때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팔찌를 사거나 만들어 착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자 주민 알리 엘두바(40)는 가족이 몰살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배우자 리나(42)를 북부 가자시티에 두 아들 및 두 딸과 함께 두고 자신은 다른 세 자녀와 함께 남부 칸 유니스로 이동했다고 통신에 말했다.
그는 폭격으로 주검이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을 목격했다며 가족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파란색 끈 팔찌를 사서 양쪽 손목에 묶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습으로 알자지라 기자 가족도 숨졌다. 알자지라는 25일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자사 기자 와엘 다흐두의 배우자 및 고등학생 아들과 7살 딸, 손자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가자시티에 거주하던 다흐두 가족은 누세이라트 난민촌으로 친척들과 함께 대피한 상태에서 참변을 당했다.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 시작 뒤 최소 22명의 언론인이 목숨을 잃었다.
사상자 급증에 대한 우려가 치솟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25일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 민간인 사상자 급증 관련 질문을 받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제시하는 숫자(사상자 수)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가자 보건부가 제시한 사상자 수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하마스가 2007년 가자지구 장악 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와 별도로 가자 보건부 장관을 임명해 운영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가자 보건부가 제시하는 수치를 신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오마르 샤키르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국장은 매체에 "모두가 가자 보건부의 수치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특정 공격에 대한 자체 수치를 집계했을 때 (가자 보건부 수치와) 큰 불일치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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