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정지영 감독 "실화 피해자에게 꽃다발 받았을 때 감동"

이영재 2023. 10. 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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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쓸 때부터 주인공에 설경구 생각…서인국도 고마워"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정지영 감독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소년들' 언론시사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3.10.23 jin90@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작은 가게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다.

당시 경찰은 죄 없는 19∼20세 남성 세 명을 범인으로 몰아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고, 이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소한 뒤에야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고, 진범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누명을 벗었다.

'소년들'의 시사회를 최근 전주에서 개최했을 때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던 세 명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정 감독을 찾아와 꽃다발을 선물했다고 한다. 꽃다발엔 '정지영 감독님 감사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감동했어요. 영화감독을 하면서 이런 보람을 느낄 때 신이 나죠."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그때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도 실제 피해자들을 만났다. 시나리오의 틀이 이미 잡힌 무렵이었는데, 피해자들을 만나 보니 영화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제작 초기 단계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고발'이었다. 정 감독은 "이야기가 공권력에 대한 고발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잡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중요한 건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힘 있는 자들이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문제고, 우리 보통 사람들도 그들을 무시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런 생각에서 ('소년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그렇게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소년들'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데 앞장서는 사람은 범인으로 몰린 소년들이 감옥에 간 뒤 완주경찰서 수사반장에 부임하는 황준철(설경구 분)이다. 실제 사건에서 변호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정 감독은 "(변호사를 중심에 놓을 경우) 스토리의 흐름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그러면 관객이 집중하기 어렵다"며 "황준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속도감 있고 일목요연하게 사건을 드러낼 수 있겠다고 봤다"고 말했다.

영화 '소년들'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 감독은 황준철 역에 설경구를 캐스팅한 데 대해선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설경구를 생각했다"며 "(과거 설경구가 연기했던 형사 캐릭터인) 강철중도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또 '소년들'이 17년에 걸친 이야기라는 점도 들며 "(황준철의) 젊을 때와 나이 든 때를 같이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설경구가 스케줄이 안 맞아 캐스팅을 거절하면 대안으로 누구를 생각했느냐'는 질문엔 "(그럴 경우엔 설경구의 스케줄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며 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소년들'에선 배우 서인국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들 가운데 한 명으로, 진실을 털어놔야 할지 갈등하는 인물을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정 감독은 서인국이 의외로 악역을 받아들여 고마웠다며 "자기 이미지를 생각해 범인과 같은 역할을 거부하는 배우는 나중에 좋은 연기자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한국 연기자들이 상당히 뛰어나다. 세계에서 연기를 제일 잘하는 것 같다"며 "캐릭터를 파악하고 구현하는 능력이 할리우드 배우들보다도 낫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하얀 전쟁'(1992)과 '부러진 화살'(2012) 등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 안성기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좋아지고 있다"며 "사람들과 만나고 접촉하는 게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특별히 아프지 않으면 대외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국내외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전도 열렸다.

실화를 영화화하면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해온 그에겐 '사회파'라는 수식어도 따라붙는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이렇게 털어놨다.

"평소에도 여행을 가거나 하면 내가 어디 있는지 지도를 보고 확인하거든요. 역사와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딘가, 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걸 그려내려는 노력인 것 같아요."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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