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디 좁은 곳서 죽어간 내딸, 넓고 큰 봉안당서 편히 쉬렴”

조성우 기자 2023. 10. 26. 19:4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몸이 10월을 기억해요. '괜찮겠지'하며 지냈는데, 10월이 되니 잠도 안 오고 몸도 여기 저기 아프네요. 몸이 그날을 잊지 못해서죠."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노류영(여·당시 27) 씨의 어머니 정미진(52) 씨는 26일 이렇게 말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는 가운데, 정 씨도 이날 영이의 봉안당을 찾았다.

한참이나 영이의 봉안담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정 씨는 "좁디 좁은 곳에서 죽어간 딸이 저 세상에서 만큼은 넓은 곳에서 마음 편히 머물길 원했다"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태원1주기 끝나지 않은 고통

- 부산 故노류영 씨 母 정미진 씨
- “참사 뒤 3개월 가게 못 열었죠
- 일상복귀 못하고 술로 아픔 달래”
- 전국 유가족과 진실규명 운동
- “왜 국가 탓이냐” 손님이 폭언도

“몸이 10월을 기억해요. ‘괜찮겠지’하며 지냈는데, 10월이 되니 잠도 안 오고 몸도 여기 저기 아프네요. 몸이 그날을 잊지 못해서죠.”

이태원참사 유족 정미진 씨가 26일 부산 기장군 부산추모공원을 찾아 납골당에 봉안된 딸 故 노류영 씨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노류영(여·당시 27) 씨의 어머니 정미진(52) 씨는 26일 이렇게 말했다. 7년째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정 씨의 일상은 1년 전부터 모두 변했다. 허망하게 딸을 떠나보낸 후 3개월은 가게도 열지 않았다. 슬픔을 달랠 길이 없어 매일 술을 마셔야 했다. 그럼에도 정 씨는 다시 가게를 열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슬픔과 절망은 늘 느닷없이 찾아왔다고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손님을 맞고, 밥을 먹고, 평범한 하루를 보낸 날에도 어김없이 고통스러웠다.

딸 류영 씨는 정 씨와 가족에겐 ‘영’이었다. 경상도 지역 특성상 이름 끝자에 애정을 담아 별명처럼 불러왔다. 영이는 부산진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그러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 지난해 목포의 한 대학 간호학과에 27세 늦깎이로 입학했다. 정 씨는 딸이 이태원에 갔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오전, 뉴스를 보다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몇 차례 더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수십분간 전화를 건 끝에 한 남성이 영이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서울 용산경찰서 직원이라고 했다. 정 씨의 삶이 무너진 순간이다.

영이가 떠난 후 가족은 슬픔을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59)와 오빠(30)는 타지에 일터가 있어 일찍이 따로 살았지만 막내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특히 사이가 좋았던 오빠는 직장을 다닐 수 없을 만큼 힘들어했다. 3개월간 휴직하고 간신히 일터로 복귀했다.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오빠는 예비 신부와 함께 영이가 묻힌 부산 추모공원을 종종 찾는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는 가운데, 정 씨도 이날 영이의 봉안당을 찾았다. 가족은 외부의 벽식봉안담에 영이를 묻었다. 내부보다 공간이 4배는 더 크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영이의 봉안담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정 씨는 “좁디 좁은 곳에서 죽어간 딸이 저 세상에서 만큼은 넓은 곳에서 마음 편히 머물길 원했다”고 말했다. 부산 추모공원을 찾을 때면 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정 씨는 서울의 다른 유가족을 만나러 갈 때만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아픔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어서다. 정 씨는 서울에 갈 때면 다른 유가족의 머리를 잘라준다. 머리를 신경 쓸 만큼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그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고 싶어서다.

정 씨가 속한 이태원참사유가족 협의회는 연대하며 슬픔을 나눌 뿐만 아니라 단체로서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참사 당일 왜 경찰이 부모들에게 희생자의 손가락 하나도 만지지 못하게 했는지, 왜 희생자 옷이 유족의 동의도 없이 벗겨졌는지 등 아무런 의문도 풀지 못한 상태다. 특히 참사 관련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릴 수 있는 내용의 이태원 특별법의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는 총 159명으로, 부산 연고자는 6명이다.

정 씨가 이태원 참사로 딸을 잃었다는 사실은 손님들도 알게 됐다. 일부러 가게 앞을 피해 가는 손님, 문자로 ‘힘내라’고 위로하는 손님 등 다양했다. 손가락질도 있었다. 수십 년간 알고 지낸 지인에게서 ‘놀러가 죽었는데 왜 국가에 책임을 요구하느냐. 정신 차리고 장사나 잘해라’는 폭언을 듣기도 했다. 정 씨의 바람은 명확하다. 공동 추모 분향소가 설치돼 모두가 희생자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 영이를, 그리고 떠나간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기는 것이 마지막까지 풀어야 할 소망이다”고 말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