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무죄 판단… “명예훼손 처벌 못해”

안경준 2023. 10. 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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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박유하(66)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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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원심 깨고 고법 파기환송
위안부 피해자 ‘매춘’으로 표현
허위사실유포 혐의 고발당해
재판부 “학문적 주장으로 보아야
표현의 자유 제한 최소한 그쳐야”
나눔의집 “사실왜곡 명예훼손” 반발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박유하(66)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적절성에 대한 검증은 형사 법정보다 공개적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다.
무죄 소감 밝히는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 앞에서 명예훼손 혐의 무죄 판결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며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 검찰이 사건을 기소한 지 약 8년, 2017년 11월 상고가 접수된 지 약 6년 만이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가 ‘매춘’이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 제국에 의한 강제 연행이 없었다는 허위 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2015년 12월 기소됐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검찰이 기소한 35곳 표현 가운데 11곳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문제가 된 표현은 “강제 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보는 견해는 ‘사실’로는 옳을 수도 있다”는 부분 등이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역사적 사실’과 같이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후적 연구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실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면서 “학문적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전체적인 맥락, 집필 의도 등을 봤을 때 박 교수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제국주의나 가부장제 질서 등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있으므로 일본의 책임에만 주목해 갈등을 키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쓴 표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위안부의 전체 규모나 조선인 비율 등에 비춰 봤을 때 해당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박 교수는 판결 직후 회견 등을 통해 “제가 강제 연행을 부인했다는 것은 커다란 오해”라며 “제가 시도한 것은 양극단을 비판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토한 일이다. 지원단체의 사고나 활동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국가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할 자유, 대한민국에 국민의 사상을 보장하는 자유가 있는지에 관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나눔의집 측은 “문제의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나 일본군의 협력자로 기술하는 등 사실을 왜곡해 매춘을 정당화하고 피해자들 명예를 훼손했다”며 “왜곡된 내용을 기술했는데 죄를 물을 수 없어 답답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나눔의집 측이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재판도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동부지법은 2016년 원고인 위안부 피해자 9명에게 박 교수가 10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민사12-1부는 다음 달 22일 6년 8개월 만에 이 사건 항소심 변론을 재개할 예정이다.

안경준 기자, 경기 광주=오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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