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트트릭으로 경쟁…한국 여자축구 미래 밝히는 페어와 천가람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최근 한국 여자축구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언급되는 게 세대교체다.
지난 7월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에 나선 한국 대표팀에서는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100경기 이상 출전을 뜻하는 '센추리클럽' 가입자만 5명이었다.
지소연(수원FC), 김혜리(현대제철) 등 간판급 선수들은 빠르면 2000년대 후반, 늦어도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 여자축구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이들을 주축으로 꾸린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1무 2패를 거두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모로코, 콜롬비아 등 약체로 인식되던 팀들에게 연이어 잡히며 세계 무대와 우리나라의 격차를 실감했다.
물론 월드컵에서 얻은 수확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린 재능' 케이시 유진 페어(무소속)의 발견이었다.
페어는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콜롬비아전 교체로 투입돼 월드컵 사상 남녀를 통틀어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다. 당시 16세 26일이었다.
마지막 경기 독일전에서는 '깜짝 선발'로 출격, 86분간 최전방을 누비며 독일의 세계적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였다.
3경기로 끝난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페어는 26일 중국 푸젠성의 샤먼 이그렛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4번째 A매치를 치렀다.
기존 붙박이였던 손화연(현대제철)을 대신해 선발로 나선 페어는 전반 33분 선제 골을 터뜨리며 콜린 벨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페어가 우리나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기록한 골이다.
이로써 페어는 한국 축구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16세 119일)에 A매치에서 득점한 선수로 기록됐다. 1위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대만전에서 골망을 흔든 지소연(15세 282일)이다.
페어는 내친김에 후반 11분, 21분에도 한 골씩 추가해 해트트릭까지 완성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페어는 복수국적자다. 지난해 15세 이하(U-15) 대표팀 소집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미국에서도 촉망받는 자원이었지만, 한국을 택했다.
이번 월드컵에 한국 소속으로 경기를 소화하면서 FIFA 규정상 이제 다른 나라를 대표해 뛸 수는 없게 됐다. 한국 여자축구로서는 든든한 스트라이커 자원을 일찌감치 확보한 셈이다.
이날 경기에서는 페어뿐 아니라 천가람(KSPO)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02년생 천가람은 여자 실업축구 WK리그에서 최고 기대주로 꼽히는 선수다.
왼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격한 천가람은 미드필드와 공격 지역을 오가며 3골을 폭발, 존재감을 제대로 뽐냈다.
천가람도 벨 감독에게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로 낙점받은 자원이다.
필승의 각오로 임한 월드컵 독일과 최종전에서 천가람도 페어처럼 선발로 나섰고, 체격이 큰 상대 수비수를 상대로 민첩한 움직임과 저돌적인 돌파를 선보였다.
천가람은 페어가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축구 최고의 유망주로 조명받았다. 지난해 말 WK리그 신인 1순위의 영광도 천가람에게 돌아갔다.
지난 7월 31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외곽의 캠벨타운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벨호의 훈련에서 천가람이 페어에 경쟁심을 느끼는 듯한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주축들이 스트레칭을 마치고 그라운드를 뜬 후에도 후보 선수들은 여러 차례 70m 스프린트를 반복했다. 페어가 대부분 1등을 차지한 가운데 천가람도 페어를 맹렬하게 뒤쫓았다.
천가람은 이후 취재진과 만나 "마지막까지 뛰고 싶은 사람은 더 강도 높게 뛰는 거다. 내 몸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항상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뛰었다"며 경쟁심을 드러냈다.
두 선수의 맹활약에 힘입은 벨호는 태국을 무려 10-1로 대파했다.
대표팀 소속 공격수 중 어린 축에 속하는 1998년생 강채림(현대제철)도 멀티골을 작성하며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 벨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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