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열광한 한국産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뉴저지 밀번 극장서 시험공연
1200석 극장 2주간 전석 매진
내년 브로드웨이 진출 협의중
"K뮤지컬도 K팝처럼 만들겠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책이 있다.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좇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룬 <위대한 개츠비>다.
이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 미국 무대에 올랐다. ‘가장 미국적인 작품’답게 제작진도, 등장 배우도 거의 다 미국인이다. 하나 특이한 건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꾸려나가는 총괄 프로듀서가 한국 사람(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이란 점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첫 공연이 열린 지난 22일 미국 뉴저지 밀번의 공연장에서 만난 신춘수 대표(사진)는 “미국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이 작품을 들고 세계 최고 뮤지컬 무대인 브로드웨이 문을 두드릴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입성을 목표로 2~3개 극장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2주치 공연 전석 매진
미국 뮤지컬 시장은 한국과 다르게 돌아간다. 한국에서 작품을 준비할 때는 서울에 있는 공연장과 공연 기간부터 정하는 게 순서다. 서울에서 인기를 끌면 부산, 대구 등 지방을 돈다. 미국은 반대다. 먼저 각 지역 공연장에서 관객 반응을 살펴보고, 그에 따라 공연 내용을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인다. 이를 시험 공연이라는 의미의 ‘트라이아웃(Try-out)’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가능성이 확인돼야 브로드웨이로 갈 수 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밀번의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 22일부터 2주간 시험 공연을 시작했다. 전 공연의 전 좌석(1200석)이 이미 ‘완판’됐다. 이 극장이 문을 연 1934년 이후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신 대표는 “미국의 트라이아웃 극장은 공연장을 빌려줄 뿐 아니라 작품에 직접 투자하고 이후 수익을 나누는 구조”라며 “그래서 작품을 깐깐하게 고른다”고 설명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제작비 350만달러(약 47억4000만원) 중 120만달러를 극장에서 투자했다. 통상 뮤지컬 한 편 제작비가 200만달러 선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투자금액도 많고, 극장이 투자한 비율도 높은 편이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는 얘기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진 뮤지컬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줄거리를 충실히 따랐다. 개츠비가 데이지와의 재회를 앞두고 부르는 ‘겨우 차 한잔(Only Tea)’에선 재미있는 가사와 율동 덕분에 객석에 웃음꽃이 피었다. 데이지를 그리며 부르는 ‘그녀를 위해(For Her)’는 극 중 여러 차례 반복돼 관객들의 머릿속에 멜로디를 꽂아 넣었다.
빅밴드 재즈와 함께 탭댄스가 어우러진 파티 장면은 화려함을 더했다. 신 대표는 “제3자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소설과 달리 뮤지컬은 개츠비가 직접 노래하며 감정을 드러낸다”며 “소설에 익숙한 관객들도 새로운 느낌으로 관람할 수 있는 뮤지컬”이라고 설명했다.
○‘3전 4기’ 브로드웨이 도전
신 대표의 브로드웨이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드림걸즈’의 공동 프로듀서로 일할 때부터 계속 두드렸다. 직접 제작에 뛰어든 것은 2012년 ‘요시미 배틀스 핑크 로봇’의 시험 공연이 처음이었다. 이후 2014년 ‘홀러 이프 야 히어 미’, 2015년 ‘닥터 지바고’ 등으로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하지만 다 실패했다. 거액의 투자금을 날렸고, 회사는 위기에 빠졌다.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등 국내에서 ‘대박’ 뮤지컬을 잇달아 내놓은 그에게도 브로드웨이의 문턱은 높았다.
신 대표는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이전에는 브로드웨이에 작품을 올리는 걸 목표로 한 탓에 완성도가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며 “위대한 개츠비는 3년 넘게 준비한 데다 수정 작업을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왜 잇따른 실패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에 도전할까. 신 대표는 “뮤지컬 제작자의 머릿속에 브로드웨이가 없다는 건 꿈과 목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국 뮤지컬도 잘 가꾸면 가요나 드라마, 영화처럼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했다.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아시아계 제작자가 브로드웨이를 휩쓴 첫 사례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K뮤지컬’ 시대도 열릴 겁니다.”
뉴욕·뉴저지=나수지 특파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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