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NGO] 모든 존재가 마음껏 존재하는 세상을

한겨레 2023. 10. 26. 18: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8년 여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학과 사무실 근로장학생이었던 나는 조교님들과 친했는데, 한 조교님이 "파인텍 굴뚝농성 행진에 가자"고 하기에 별생각 없이 "좋아요"라고 했다.

친구들과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관한 책모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집회에 참여하다 집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을 하게 되니, 부정의나 부당한 것과 투쟁하는 사람들과 보다 가깝게 연대할 수 있어 좋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NGO]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복직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에 참여하는 모습. 전병철 제공

안나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2018년 여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학과 사무실 근로장학생이었던 나는 조교님들과 친했는데, 한 조교님이 “파인텍 굴뚝농성 행진에 가자”고 하기에 별생각 없이 “좋아요”라고 했다. 파인텍 굴뚝 농성 스토리펀딩 글을 쓴 분이었다. 그렇게 현장을 찾아 분홍색 풍선을 흔들며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까지 행진했다. 고개 들어 75m 높이 굴뚝을 보는데, 믿기지 않았다. ‘저 위에 사람이 있다고?’ 꼭대기에서 손을 흔드는 박준호, 홍기탁 두 사람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사실이었다.

경북 구미의 섬유 가공업체 스타케미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회사가 인수되고 폐업하는 과정에서 해고당해 굴뚝에 올랐다고 했다. 일하고 싶다며 굴뚝에 오른 사람을 걱정하며 응원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놀라웠다. 계속해서 그곳을 찾게 됐고, 이듬해 1월 두 사람은 426일 만에 땅을 밟았다. 파인텍 투쟁의 마무리였는데, 나의 투쟁은 시작이었다.

굴뚝 아래에서 많은 사람과 대화하면서 다른 여러 현장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3년째 해고 투쟁 중인 콜텍 노동자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노동자까지. 노동자 문제로 시작했는데 여성과 퀴어, 기후위기까지, 내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촛불을 드는 장소가 늘어났다. 정치나 사회운동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덧 살펴보니 나는 매일 관련 기사를 찾아 읽고 시간 날 때면 서울 곳곳 농성장에 서 있었다. 친구들과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관한 책모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2020년 겨울 여러 현장에서 만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활동가에게서 상임활동가 제안을 받고 바로 좋다고 했다. 그렇게 2021년 2월1일부터 활동가로서 삶을 시작했다. 인권 보편을 다루는 단체이다 보니 노동과 국제연대, 임신중지권리 등 다양한 의제와 관련해 활동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하다 집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을 하게 되니, 부정의나 부당한 것과 투쟁하는 사람들과 보다 가깝게 연대할 수 있어 좋았다.

지난 7월7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진행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노숙집회의 저녁 문화제 모습. 집회참여자들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인권침해감시단 활동가들이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알 제공

최근 집회현장에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항의하기 위해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했다. 인권침해나 폭력 상황이 발생하면 영상을 찍고 경찰에게 항의하며 문제제기하는 일이었다. 지난 7월7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서울시내 1박2일 집회가 경찰에 강제해산 당했다. 집회참여자들은 사지가 들려 나가고 몇몇은 쓰러지기도 했다. 나도 경찰에게 끌러나갔고 조사를 받았다. 집회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하고 여러 사람이 신체적, 심리적으로 상처받아야 한다니, 속이 너무 상해서 구석에서 울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함께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활동가를 시작할 땐 단기적인 진로체험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처음엔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맞서 싸우고 있던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3년쯤 지나고 나니 더 큰 꿈을 갖게 되었다. 중대재해, 해고, 차별 등을 겪는 사람만 바뀔 뿐 반복되는데,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고, 무언가를 하긴 하는데 바뀌는 건 없는 것 같아 절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 모든 존재가 마음껏 존재하는 세상을 향한 마음만은 계속 커지고 있으니까.

‘각자도생의 시대 나는 왜 공익활동의 길을 선택했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투고(opinion@hani.co.kr)를 환영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