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항공기에 밀렸던 美 고속철, 뒤늦게 질주 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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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 신칸센이 운행을 개시한 지 59년이 지났다. 2003년 고속열차 시대를 시작한 중국은 20년 만에 4만493㎞에 이르는 거대한 고속철도망을 구축했다. 유럽에서도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을 중심으로 대도시 간 고속철도망이 갖춰져 있다. 반면 미국의 고속철도는 보스턴~뉴욕~워싱턴 DC를 잇는 735㎞ 구간이 유일하다. 최고 속도도 시속 240㎞로 고속철도치고는 느린 편이다.
그동안 고속철도 분야에서 ‘지각생’이었던 미국이 본격적인 추격에 들어갔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이미 공사에 들어갔고, 텍사스주·워싱턴주에서도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2021년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법(IIJA)’으로 660억달러의 예산을 철도 교통망 개선용으로 책정하면서 고속철도 확대는 부쩍 탄력을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미 건설 중
미국에서 고속철도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캘리포니아주다. 샌프란시스코 남동쪽 도시 머세드와 로스앤젤레스(LA) 북서쪽 도시 베이커스필드를 연결하는 275㎞ 구간이 건설 중이다. 개통은 이르면 2030년이다.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잇는 노선도 추진되고 있다. 최고 시속 350㎞짜리 열차를 투입하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보다 북쪽에 있는 새크라멘토와 멕시코 접경인 남쪽의 샌디에이고까지 연결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간 철도 회사인 브라이트라인은 LA 인근 도시 란초 쿠카몽가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고속철도를 추진하고 있다. 남부 텍사스주에서도 휴스턴에서 댈러스까지 고속철도를 까는 계획이 추진 중이다. 최고 시속 330㎞ 열차를 투입할 계획이라, 편도로 1시간 30분이면 주파한다.
이 외에도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 노선이 여럿이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시애틀과 포틀랜드를 연결하는 국가 간 고속철도 건설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이 사업에 대해서는 본사가 시애틀 근교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타당성 조사 비용 50만달러를 내놨다. 이 외에 플로리다주에서는 올랜도~탬파 노선이 거론되고 있고, 보스턴~뉴욕~워싱턴 DC 노선도 훨씬 빠른 새로운 노선을 건설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시간 절약과 친환경 일거양득
미국에서 고속철도 건설 붐이 일고 있는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도심끼리 연결이 신속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인다. 항공기가 고속열차보다 훨씬 빠르긴 하지만, 보안 검색이나 탑승 수속이 시간을 잡아먹고 도시 외곽의 공항까지 오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미국고속철도협회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LA 도심까지 고속철도가 뚫릴 경우 3시간 10분이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행기(5시간 20분)나 자동차(7시간 20분)보다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도 고속철도의 필요성이 커졌다. 고속열차는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고속철도를 늘리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비행기 운항은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미 연방철도국(FRA) 관계자는 “승객 한 명이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이동할 때 철도를 이용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5.3kg으로서 버스(26.7kg), 자동차(135kg), 비행기(141.1kg)보다 적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라고 했다.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도 담겨 있다. 철도를 건설하면 현장에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또 고속열차를 제작·정비하기 위한 인력들도 많이 필요하게 된다. 미국고속철도협회는 “고속철도를 놓으면 좋은 일자리가 있는 대도시 중심으로부터 더 멀리 살아도 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주택 가격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미국에서 그동안 고속철도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도로·항공 교통망이 워낙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에단 엘카인드 UC버클리 교수는 “국토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 자동차가 편리한 지역이 많은 데다, 주요 도시들이 승용차 보급 이후 형성됐기 때문에 자동차 중심으로 교통망이 짜였다”고 했다.
또한 미국은 국내선 항공 노선이 400개에 가깝고, 작년 국내선 탑승객이 7억5100만명에 달하는 ‘항공 교통의 천국’이다. 교통 전문가인 로버트 세르베로 UC버클리 명예교수는 “고속철도의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스위트 스폿’ 거리는 480~720㎞ 정도”라며 “도쿄~오사카, 파리~리옹처럼 이 정도 거리 내에 위치한 대도시 조합을 미국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불어난 공사비가 변수
미국에서 고속철도 건설 논의가 활발하지만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며 인플레이션으로 공사비가 크게 올라 발목을 잡고 있다. 휴스턴~댈러스 노선은 원래 2020년 공사를 시작해 2026년까지 개통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철도 건설과 열차 구입에 필요한 비용이 300억달러(약 40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는 최초 계획 당시 비용의 3배다. 밴쿠버~시애틀~포틀랜드 노선도 타당성 조사에서는 “2035년이면 개통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난관도 있다. 빽빽하게 개발된 도시를 통과하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려다 보면 토지 수용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환경·노동 부문의 규제가 강한 편이라 이를 준수하려면 사업비가 많이 필요하다. 세르베로 교수는 “미국 도시 중에서는 시내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다”며 “이렇게 되면 고속열차를 타고 와도 도시 내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거리 이동 시 자동차를 선호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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