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버스터] 평양에서 가자까지 8000km…연결고리 된 땅굴과 낙하산?
김아영 기자 2023. 10. 26. 18:27
안녕하세요. 외교 안보 뉴스를 정밀 타격하듯 풀어드리는 벙커버스터입니다. 저는 SBS 김아영입니다. 터널 랫츠(tunnel rats), 땅굴 쥐란 뜻이죠.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군이 땅굴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전장의 골칫거리로 부상하자 미군이 별도로 만든 부대였습니다. 몸집이 작은 병사들을 선발해 땅굴 침입을 시도했지만 속속 당하고 말았는데요.
야아코프 아미드로르 /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보좌관
하마스는 준비를 해왔죠. 가자지구에는 수백 킬로미터가 넘을지 모르는 땅굴 네트워크가 있죠.
오늘은 수 십 년이 흘러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 땅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지하에 군수공장 밀집…땅굴의 고수 북한
땅굴의 고수라면 북한도 빠지지 않습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북한이 정말 잘하는 7가지를 선정한 적이 있는데 심지어 여기에도 포함됐을 정도죠.
김진무 /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제일 큰 탄약 공장이 26호 공장이라고 하는데 자강도에 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공장이에요. 그게 땅굴에 있어요. 군수공장의 80% 땅굴에 있어요. 땅을 파는 기술은 뭐 대단한 거죠.
땅굴을 견고하게 파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상대에게 위치를 들키지 않을 것, 즉 은닉성을 확보하는 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북한이 가진 땅굴 기술이란 게 어떤 걸까요.
김진무 /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휴전선 부근의 땅굴을 파는 탈북자의 이야기는 (탐지를 막기 위해) 흙이 아닌 것처럼 이렇게 위장을 한다거나 또 메인 굴이 있으면 옆으로 가지 굴을 판다고 해요. 앞으로 계속 나가면서 판 흙으로 가지 굴을 메우는 거예요. 그럼 (바깥으로) 흙이 안 나오잖아요.
북한은 1971년 김일성의 이른바 9.25 교시 이후 남침용 땅굴을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의 땅굴이 북한에게서 전수됐다는 건 사실 해묵은 논란거리 중 하나입니다.
빅터 차 / 미국 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2014년 9월)
"북한은 땅굴 기술을 전 세계에 수출해온 역사 갖고 있어…하마스 땅굴 적극 지원 의혹"
이스라엘의 한 안보단체는 북한이 레바논 무장 세력인 헤즈볼라에 땅굴 기술을 전수해 줬고, 이 기술이 다시 하마스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미 국방정보국 출신으로 1990년대부터 북한 무기 거래 움직임을 추적해 온 브루스 벡톨 엔젤로 주립대 교수 역시 북한 전수설은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일찌감치 평가했습니다.
낙하산 침투도 베끼기?…"DMZ가 필요하다"
하마스의 전술 가운데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의 것을 빼닮았다며 이번에 특히 주목한 것이 있습니다. 낙하산을 활용한 후방 침투 방식입니다. 유대교 명절을 맞아 열린 음악 축제 현장의 상공. 난데없이 검은 낙하산을 탄 무장 대원들이 떨어지면서 춤추던 젊은이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북한이 비슷한 훈련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중앙TV (2016년 12월)
적의 대상물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고지들에서 활공낙하산을 타고 날새마냥 눈 깜빡할 사이에 침투하여
다만 남북한 사이엔 4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가 있는 만큼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하듯 작전할 수는 없을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사이에는 비무장지대도 완충 구역도 없이 높이 6미터의 콘크리트 장벽만 있을 뿐인데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던 게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육군 소장 출신으로 네타냐후 총리의 안보 정책을 총괄했던 야아코프 아미드로르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도 가자지구에 한국처럼 DMZ를 도입할 거란 주장을 펼치기도 했죠.
야아코프 아미드로르 /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보좌관
우리는 당신들이 갖고 있는 것, DMZ를 만들 겁니다. 어떤 사람도 들어갈 수 없고 누구라도 거기에 들어간다면 총격을 받게 될 겁니다.
북한은 낙하산을 활용한 침투 능력 요즘도 공공연히 과시하는 중입니다. 2년 전 무기 박람회 현장에선 파란색 타이즈를 입고 김정은과 사진을 찍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인물이 있었는데요. 역시 공수작전을 수행하는 낙하산병으로 추정됐습니다.
하마스 손에 들린 RPG-7…가성비 갑 북한 수출 상품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이 생산한 무기가 하마스로까지 흘러 들어간 정황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하마스 대원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이스라엘 군이 대거 압수했더니 대전차 무기인 RPG-7이 나왔고, 북한에서 생산한 F-7이라는 분석이 제기된 것이죠. 여기서 잠깐! RPG-7은 구소련이 처음 개발해 북한도 생산하고 있는 무기 체계입니다. 1993년 모가디슈 전투 당시 소말리아 민병대가 RPG-7으로 미군의 블랙호크 2대를 격추시켰을 만큼 가성비가 높은 무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진무 /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무서운 무기죠. 어깨에 밀고 땅 쏘면 그냥 날아가서 파괴력이 엄청나게 크고. 그 대신 엄청 싼 무기 체계입니다.
북한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중동의 무장 세력들에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는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는데 가장 큰 경쟁력은 역시 가격이라는 설명입니다.
김진무 /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국제 시세의) 3분의 1도 안 될 겁니다. (북한은) 무기를 하나 만드는 원가 자체가 엄청나게 싼 거죠. 인건비가 안 들어가죠. 원료는 국가 소유니까 캐 가지고 오면 되는 거잖아요. 전 세계 분쟁 지역에 북한 무기가 다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합참은 하마스 예하 무장단체에서 사용한 무기로 보이는 북한제 122㎜ 방사포탄이 이스라엘 국경 지역에서 발견됐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들어갔나…"모략선전, 낭설" 발끈
이스라엘 군사 전문가이기도 한 아미드로르 전 보좌관은 헤즈볼라가 북한 무기를 갖고 있다는 걸 이미 확인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야아코프 아미드로르 /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보좌관
2006년에 북한산 로켓이 (헤즈볼라에) 들어간 것을 발견했고 이란을 통해서 갔다는 것도 알게 됐죠.
하마스가 가지고 있단 사실도 예상 가능한 범위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야아코프 아미드로르 /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보좌관
이란과 북한, 시리아,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헤즈볼라는 모두 결합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지원자가 북한이죠.
하마스 연계설에 북한 입장은 간명합니다.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거죠. 기시감이 들기도 하는데 과거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0년 이스라엘 정부가 북한이 122mm 로켓 등을 태국을 거쳐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판매하려 했다고 주장했었거든요. 당시 북한 반응입니다.
조선중앙TV (2010년 5월)
파렴치한 발언이다. 이스라엘이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을 감히 비방 중상한 데 대하여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 뒤 미국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게이츠는 "북한은 버마(미얀마 과거 명칭), 이란, 헤즈볼라, 하마스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사일과 무기류 밀수출을 계속해왔다"고 발언했죠. 이번 연결 고리는 언제 어떻게 생긴 걸까요.
야아코프 아미드로르 /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보좌관
우리가 언제 전쟁을 끝낼지 모르지만 하마스가 북한산 다른 무기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해야겠죠. 우리가 장차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북한에서 사람도 물자도 쉽게 건너갈 수 없었던 걸 감안하면 전술 교리든 무기든 최근에 넘어갔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직간접적으로 오래전에 넘어가 있던 것들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을 계기로 수면 위에 드러났을 거란 분석이 오히려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하마스와 북한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살펴봤는데요. 계기마다 조금씩 형태를 바꿔 논란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동안 빠져있던 적이 있긴 하지만 북한은 지금도 미국 정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입니다. 북한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세력인 파타와는 어느 정도의 사이일까요? 북한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 편에서 짚어 보겠습니다.
(취재 : 김아영 / 영상취재 : 이재영 양지훈 / 편집 : 이기은 / 콘텐츠디자인 : 김정연 / 번역 : 인턴 박상은 / 제작 : 디지털뉴스제작부 / 장소 협조 : 전쟁기념관)
김아영 기자 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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