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아 듬뿍 해조류칩에 돔페리뇽 한잔…입안 가득 바다가 톡톡~
홍콩 프렌치 레스토랑 '앰버'
15년째 미쉐린 2스타 비결은
자연의 맛 살리면서도 탱글, 쫄깃, 바삭
한폭의 예술작품 같은 플레이팅까지…
오감으로 즐기다보면 주방에서 초대
환상적인 동과·삼치요리 시식 '감동'
클래식을 현대화하는 건 때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현실적인 고민을 더해 시대정신을 입히고, 전통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실행에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미식업계도 마찬가지다. 덩치가 크고 시스템이 복잡하다면 개인 업장보다 더 큰 도전이다.
미식가 필수코스…홍콩 클래식 프렌치 하면 ‘앰버’
홍콩엔 거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곳이 있다. 홍콩 클래식 프렌치를 떠올렸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레스토랑 앰버(Amber)다. 이번 편은 앰버를 품고 있는 홍콩의 더랜드마크만다린오리엔탈호텔과 앰버를 책임지고 있는 셰프 리차드 이케부스의 이야기다.
얼마 전 찾아간 더랜드마크만다린오리엔탈호텔은 마침 18주년을 맞이한 날이었다. 이 호텔은 만다린오리엔탈호텔과 같은 그룹 소속으로 더 세련된 감각을 더한 부티크호텔로 자리잡고 있다. 이 호텔을 더 빛나게 하는 건 미쉐린 2스타의 별을 지닌 레스토랑 앰버, MO바 그리고 요즘 가장 핫한 PDT바(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유명한 스피키지바의 홍콩지점)다. 미식을 즐기는 이들에겐 최적의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앰버에서 본격적인 디너를 즐기기 전 예약해 둔 PDT바에 들렀다. PDT는 ‘플리즈 돈 텔(Please don’t tell)’의 축약어다. 들어가는 방법도 꽤 매력적이다. 호텔 1층에 있는 MO바를 통해 예약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한데 스피키지바의 클래식함이 느껴진다. 공중전화기 부스로 들어가 미리 약속된 버튼을 누르면 비밀스러운 입구가 열리는데, 리드미컬한 셰이킹 사운드와 함께 25석의 자그마한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의 간단한 요리 메뉴도 앰버의 이케부스 셰프가 맡아 구성했다.
글로벌 바 어워드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는 PDT바의 칵테일 메뉴와 완벽한 페어링이 이뤄진다. 바텐더들은 레스토랑만큼이나 로컬 재료에 목숨을 건다. 버번위스키에 베이컨 향을 입힌 ‘벤턴스 올드 패션드(Benton’s old fashioned)’와 시트러스 뉘앙스가 은은한 럼 베이스의 ‘패딩턴(Paddington)’을 추천한다. 곁들이는 메뉴로는 광둥요리 딤섬 중 하나인 창펀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창펀토츠’와 백김치를 곁들인 핫도그 ‘코리안 도그’를 꼭 맛보길 권한다. 이 조합은 눈으로도 재미있고 맛으로도 아쉬움이 없었다.
끝없는 도전…지속가능 미식으로 ‘미쉐린 그린스타’
기분 좋은 워밍업을 끝내고 앰버로 향했다. 앰버는 이 호텔의 상징적인 프렌치레스토랑으로 올해 15년차에 접어들었다.
2008년부터 꾸준히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고 2스타를 유지하며 늘 아시아 베스트50 레스토랑의 상위권을 유지하는 앰버. 지난해와 올해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스템 운영으로 ‘미쉐린 그린스타(Sustainable gastronomy)’도 받았다. 빵과 함께 나오는 버터를 코코넛과 콩을 더해 만든 스프레드로 교체하거나, 주방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대폭 줄이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05년 앰버의 수장이 된 이케부스 셰프는 변화를 이끄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피에르가니에르, 알랭파사드 그리고 기사보이를 거친 베테랑. 클래식 프렌치를 모던한 틀로 재구성하며 앰버만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2018년 12월 잠시 문을 닫고 4개월 동안 리뉴얼했는데, 당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고민하며 식재료 본연의 깨끗한 맛을 살리면서도 맛에 대한 즐거움을 잃지 않게 하려는 그림을 구상했다고 한다.
눈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의 질감과 색상을 활용하며 앰버만의 개성을 어필하는 그만의 방법은 시대감을 잃지 않으며 새로운 고객을 유입시키는 노련함으로 표현된다.
앰버를 가장 농밀하게 즐길 수 있는 건 풀코스다. 페어링은 샴페인 돔페리뇽의 앰버서더이기도 한 이케부스 셰프가 추천한 네 잔의 돔페리뇽 빈티지였다. 첫 코스는 밀싹 소스를 곁들인 시마아지가 입맛을 돋운 뒤 해조류칩과 캐비아 디시가 이어졌다.
최고 품질의 캐비아를 풍성하게 올린 이 디시는 앰버를 대표하는 시그니처로도 불린다. 샴페인과 캐비아 그리고 감칠맛을 돋우는 해조류칩의 삼합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까. 캐비아의 호방한 양과 부드럽고도 짭조름한 염도가 성게 알과 어우러지면서 입 안에 바다를 가득 머금은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진 요리는 딜과 페넬을 넣은 새우요리. 팔각과 향신료를 더해 새우완탕의 느낌을 담았다.
눈·코·입이 즐겁다…키친바 체험 기회도
중간에 사워도우와 코코넛 콩 등으로 만든 버터 대체 스프레드가 등장한 후 주방에서 정중한 콜이 들어왔다. 이곳은 키친 체험이 식사 중간에 이뤄진다. 손님이 직접 키친에 들어가는데, 라이브로 만들어 주는 ‘동과를 곁들인 삼치 요리’를 맛보고 즐길 수 있다.
키친 바에 들어서서 빠르게 흐르는 키친 스태프들과 이케부스 셰프의 움직임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우연히 만난 독일 미쉐린 3스타 토마스 뷰너 셰프와의 조우 또한 특별한 순간이다. 이후엔 트러플을 곁들인 이베리코 돼지 볼살요리&프랑스 서머 트러플 그리고 메인인 비둘기 요리를 즐겼다.
프렌치는 이런 가금류 메인이 코스의 꽃이라고 여겨지는데, 역시나 수려한 기술로 매만진 완성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름의 끝을 잡고 있는 복숭아와 라벤더 아이스크림이 프리디저트로 등장하고 호지차 초콜릿 디저트와 프티푸르, 과일로 마무리됐다. 직접 담근 매실주는 그야말로 위트 넘치는 엔딩이었다.
재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치열한 경쟁 산업인 외식업에서 앰버는 수십 년간 쌓은 기술과 철학이 어떻게 유연하고 세련되게 재정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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