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칼럼] 권위자 말이라도 비판적으로 수용하라

2023. 10. 26. 18: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일반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이 세상 이치를 더 잘 알 것이다. 국내외 좋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더 많이 알 것이다.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공부했으니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 뻥튀기 인식된다는 데 있다. 이것은 학벌 사회의 어두운 풍경이다.

박사는 전공 분야의 전문가일 뿐 모든 영역에서 전문가는 아니다. 부동산 학위 논문 분야만 해도 개발, 분양, 임대, 중개, 시세, 국공유지, 경매 등 100여 가지가 넘을 것이다. 자신이 전공한 해당 분야만 잘 알지, 나머지는 그냥 일반인 수준의 지식만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전공한 그 분야 지식도 세월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공부도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어느새 구닥다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국내외 유명대학 박사라는 후광에 휘둘리지 말라.

박사 학위 논문 쓰기가 좀 어렵긴 하지만 누구나 시간만 들이면 할 수 있다. 엉덩이가 좀 무거워야 하지만 '넘사벽'은 아니다. 박사는 스승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학문의 공부를 다 끝낸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종합적인 사고능력, 글쓰기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고나 할까.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점수로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바로 운전을 잘하는 고수는 아니다.

박사는 그 분야에서 대성한 사람이 아니다. 해외 명문대학 박사 출신의 유명 소설가나 기업인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이런데도 우리는 학문 통과의례에 불과한 박사라는 후광에 쉽게 현혹된다. 특히 해외 유명박사는 그 정도가 심하다. 그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대단한 학식과 권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꾸준히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이 알고 정확할 수 있다. 아무리 유명한 박사의 말이라도 가려서 들어야 한다. 해외 유명대학 출신 박사나 외국 유명대학 교수라고 다 현자가 아니다. 오히려 국내 사정을 더 모를 수 있다.

최근 유럽 대학 경제학과의 한국인 교수가 경제, 정치, 사회, 복지 문제를 두루 다룬 책을 냈다. 사람들은 박사의 개인적 견해인데도 유명대학 교수 후광에 마치 복음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난 솔직히 놀랐다. 그 많은 분야를 조언할 정도로 지식의 깊이가 있을까? 그리고 진단과 처방이 우리 현실에 맞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여러 의구심이 들었다. 그 사람의 명함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 가장 위험한 것은 타이틀 후광에 휘둘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는 점이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idols ofthe theatre)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극장의 우상은 극장의 무대 위에서 권위자가 하는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믿는 선입견이다.

사람들은 앞날이 불안할수록 권위자의 예측에 귀를 쫑긋 세운다. 전문가로 포장된 권위에 자신을 맡겨버리려 한다. 같은 전망보고서라도 외국계 유명 금융기관, 연구소 타이틀만 붙으면 더 주눅이 든다. 그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타이틀에 압도당한다. 그러나 실상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 없다. 전문가들의 예측도 번번이 틀린다. 그래도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은 여전히 계속된다.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예측은 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올까?

실제로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경제 전문가란 두 눈을 가리고 싸우는 검투사와 같다"라고 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일부 경제 전문가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사계절의 자연적 현상에 대한 예측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복잡다단한 경제 현상처럼 수십 개의 변수가 모여 울리는 변주곡을 알아맞히는 것은 녹록지 않다. 그 누구든 완벽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권위자 앞에만 서면 자기도 모르게 작아진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냉철한 사고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다만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학문의 금자탑을 쌓은 사람을 존중하라. 그러나 무조건 따르지는 말라. 세상에 맹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말이든 냉철한 시각에서 선별 수용하는 지적인 힘이 필요하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