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은근슬쩍 빼고 면전에서 면죄부

김명지 기자 2023. 10. 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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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전승호 대웅제약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대웅제약이 올해 8월 SK증권에 내용증명을 보내 경쟁업체인 메디톡스에 대한 실적 분석 리포트를 발간하지 말라고 압박했다는 의혹을 확인하려는 자리였다.

증권업계는 대웅제약의 전승호 대표가 국회로 불려 가 호되게 혼이 날 것으로 생각했다.

대웅제약은 SK증권에 특정 애널리스트를 지목한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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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전승호 대웅제약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대웅제약이 올해 8월 SK증권에 내용증명을 보내 경쟁업체인 메디톡스에 대한 실적 분석 리포트를 발간하지 말라고 압박했다는 의혹을 확인하려는 자리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무위 간사인 김종민 의원이 전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전 대표의 증인 출석에 관심이 쏠렸다. 국내 제약사 최고경영자(CEO)가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담당하는 보건복지위원회가 아닌 정무위 증인으로 채택된 것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대웅제약의 전승호 대표가 국회로 불려 가 호되게 혼이 날 것으로 생각했다. 대웅제약은 SK증권에 특정 애널리스트를 지목한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한다. 상장사가 기업 분석 리포트 내용을 이유로 증권사에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 사상 초유의 일이다.

증권사 리포트는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참고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독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이다. 기업이 리포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개입하기 시작하면 객관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개인 투자자에게 간다.

하지만 이날 정무위에서는 전 대표를 너그럽게 보내줬다. 김 의원은 “(대웅제약이) 개별 애널리스트를 징계하라는 공문을 (증권사에) 보낸 것은 리포트 문화를 흔들 수 있다”면서도 “대웅제약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불러 “(증권사 리포트가)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기업이 자기를 소명할 수 있는 루트를 법적으로 만들어 주라”고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전 대표는 김 의원이 말할 때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라고 응수했다. 국회가 증권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증인을 불러 놓고 ‘억울할 수 있다’며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를 두고 대웅제약이 올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을 대관 담당자로 영입한 덕분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국정감사보다 더욱 해괴한 건 대웅제약의 대응이었다. 국회의원의 너그러운 말 한마디에 힘을 얻었는지, 이날 국감이 끝나자마자 ‘증권사 외압 논란’을 해소했다며 보도자료를 뿌렸다. SK증권에 내용 증명을 보낸 것에 대한 사과의 말은 없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국회에 출석했다면 자중해야 하는데, 면죄부를 얻었다고 자축했다. 대웅제약 보도자료를 본 한 보좌진은 “대웅제약 방지법이라도 만들어야겠다”며 허탈해 했다.

하지만 대웅제약의 국감 면죄부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올해 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불법 리베이트, 의약품 품질 관리 기준 위반, 의약품 입찰 담합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주요 제약사 CEO들의 증인 출석이 예고됐지만, 대부분 막판에 철회되거나 대리인을 내세웠다.

안국약품 원덕연 대표이사, 한국휴텍스 이상일 대표는 대리인으로 바꿔 출석했다. 국가 백신 입찰 사업 담합 의혹을 받은 허은철 GC녹십자 대표,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대표, 보령바이오파마 김기철 대표는 최종 명단에서 아예 제외됐다.

정치권에서 기업인을 존중해 경영 활동에서 고충을 들어주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태도는 맞는다. 그러나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기업들을 봐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봐주기 시작하면 기업은 국회를 우습게 보기 시작한다. 기업이 국회를 우습게 본다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정경 협력’으로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정경협력은 자칫 잘못하면 정경유착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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