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인 해양의 문 닫히고 있어...한국에 직접적 위협될 것”
26일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아펙(APEC)하우스에서 열린 2023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둘째 날 ‘동아시아 해양갈등 양상 및 평화구축 방안’을 주제로 진행한 특별세션에서 참석자들은 동아시아 해양에서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미-중 갈등이 커질수록 한반도 인근 해역의 위험도 함께 커진다고 진단하며 해양을 다시 공생 협력공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토론자로 나선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는 “해양이라는 공간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재 성격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이런 문이 닫히고 있다”며 “해양에서 강대국 정치의 대리전이 펼쳐지고 있다. 세계화의 문이 닫히고 진영화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동아시아와 남중국해를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바다에서 복합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식량·보건·경제·군사·핵 안보까지 모두 연결된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미-중 갈등이 해양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현태 인천대 교수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2%까지 낮아져 고착화된다는 관측인 ‘차이나피크론’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2030년께 중국의 경제규모는 미국과 같아진다. 미국과 중국, 양강 슈퍼파워 시대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는 것이다”라며 “동아시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미국과 동등해진 중국은 동아시아에만 힘을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경제·외교·군사적 영향력 등 모든 측면에서 보면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채수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북방극지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은 “지금 국제정세는 국제정치 영향이 한반도에 바로 투입될 수도 있는 무서운 상황”이라며 “한·미·일과 북·중·러의 냉전 구도가 고착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현 수준에서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만 문제는 한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태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통해 2차대전 패배 뒷수습을 했지만 영토·분단·역사 문제 등 제대로 된 전후 처리를 하지 못했다”며 “지금까지는 미국의 압력 속에서 수면 아래 있던 갈등의 요인들이었지만 이제 위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대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한반도에 직결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만 교수(국립해양박물관 관장)는 “대만 문제를 통해 우리는 규칙과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며 “중국은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무력화하려고 하는데 이는 대결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해에서 중국의 압력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봤다.
반길주 교수는 “대결의 바다가 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서해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중국은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모호한 지대로 만들며 상대의 이익을 잠식하는 ‘회색지대 전술’을 쓰곤 하는데, 서해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해양 갈등이 국가 간의 이익 다툼 탓에 발생하는 만큼 전문가 단위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길주 교수는 “해양 문제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워낙 심각하게 발생하는 문제여서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며 “정부 차원이 아닌 전문가 중심의 트랙2로 의제화하면서 발전시키고, 이후에는 민관이 융합된 트랙1.5로 발전시키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해양 신뢰구축 조처를 가동하려면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해양은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공간이 아니다. 한번 시도했다가 안 된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동아시아 해양에서의 파국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새로운 신뢰구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창수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당분간 남북 대화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새로운 신뢰구축 장치가 필요하다”며 “냉전시대에도 신뢰구축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장치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노력과 상상력의 부족 탓”이라고 말했다.
부산/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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