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걸리겠지만 좋은 날 올 것"…'소년들' 설경구가 바라본 한국 영화의 전망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노한빈 기자] 배우 설경구가 한국 영화의 전망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영화 '소년들'의 주역 설경구를 만났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건 실화극.
지난 1999년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바탕으로 극화한 '소년들'은 정지영 감독의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2012), 금융범죄 실화극 '블랙머니'(2019)를 잇는 이른바 실화극 3부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설경구는 우리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수사반장 황준철 역을 맡았다. 황준철은 한번 문 건 절대 놓지 않는다 해서 미친개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로, 우리슈퍼 진범에 대한 제보를 들은 후 소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힘썼다.
베테랑 형사의 아우라를 풍기는 설경구는 열정 가득한 형사의 모습부터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해진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16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 그는 디테일한 연기로 극을 몰입을 끌어올렸다.
이날 올해 영화 '유령'을 시작으로 '더 문', '길복순', 이번에 개봉하는 '소년들'까지 여러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게 된 설경구는 "올해가 특별하다기보단 다사다난하다"며 "아쉬움도 많고 생각도 많이 드는 해다. 생각이 많아지는 해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중 '유령'과 '더 문'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으나,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만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그는 "'더 문' 스코어에 충격이었다"며 "'길복순'은 정식 극장 개봉이 아니라 OTT인데 되게 잘 됐다고 하더라. 일본에서 특히 오래 걸렸다. VIP 시사회도 극장에서 하고, 베를린에도 초청돼서 큰 관에서 상영했지만 넷플릭스 공개된 후로는 극장에서 못한다. 영화로 만들었는데 스크린에서 못 본다니 아이러니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영화로 만들어놓고 스크린에서 못 본다는 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것 같아요. 'OTT만 해야 돼', '영화만 해야 돼'는 아닌 것 같고 현실적으로 같이 공존해야 하는 것 같아요. 높아진 눈높이에 맞게 작품 수준을 올려야 한다는 사명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영화 시장에) 계속 변화가 올 것 같은데, 또 좋은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영화는 계속 상영될 거예요."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주체적"이라는 점을 꼽으면서 "집에서 보는 건 기다렸다가 보는 건데 마음이 움직이는 건 극장 같다. 집에서는 내 앞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볼 수 있는데 극장은 내가 선택해서 마음이 움직여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큰 스크린으로, 압도되는 화면을 통해 전달하는 게 영화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소년들' 출연 계기를 묻자 그는 "감독님을 우연히 뵀는데 '나랑 작품 해야지' 하시더라. 으레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렇게 말씀해 주니까 감사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를 보내셔서 놀랐다. 처음에는 시간의 순서대로 과거부터 현재로 흘러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17년 후가 되니까 반장 자체 힘도 떨어지고 다른 작품을 섞어놓은 것 같더라. 다른 캐릭터 같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섞으셨다"고 이야기했다.
"전에는 비슷한 캐릭터면 안 했어요. '강철중'(2008)보다 잘할 자신이 없었고, 제가 하면 '강철중'이 된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었어요. 그런데 정지영 감독님 작품이라는 점이 컸어요. 사회에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오신 분이라서 감독님에 대한 존경 때문에 하게 됐어요. 실화라는 큰 사건을 갖고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님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진정성 있는 분들이에요. 실화라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함도 있지만 감독님에 대한 강렬함도 있었어요."
또한 그는 정지영 감독에 대해 "스태프 막내까지 동료로 생각하신다. 모든 사람을 수평관계로 본다"며 "몇 번 마주쳤는데 촬영장 복도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당황해서 싸우는 줄 알았다 '미쳤나' 했는데 그게 감독님의 토론이었다. 진짜 소년 같고 마인드가 다르시다. 제 선입견으로는 '어쩔 수 없이 꼰대실 거다', '의식하지 않아도 꼰대 모습이 나올 거다' 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저도 그렇게 나이 먹고 싶다"고 존경심을 표현했다.
17년 세월의 전후 변화 차이를 표현해야 했던 설경구는 패기만만했던 젊은 황준철과 늙고 지친 황준철의 간극을 위해 살을 뺐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먼저 촬영했고 17년 후를 촬영하는데 3주 정도 시간을 주기로 했다"며 "그런데 촬영이 밀려 일주일이 남았다. 다 철수하고 매니저들도 서울로 올라가고 저만 숙소에 남았다. 방법이 없었다. 굶어야 했다. 어지러울 때까지 뺐다"고 털어놨다.
실제 사건의 인물들을 만난 후 "마음이 이상했다"는 그는 "실제로 그분들을 보면 해결된 건 없는 것 같다. 마음으로 누르고 계신 것 같다. '해결은 영원히 안 되는구나' 느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다. 소년들이 목소리를 내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 피해자들은 너무 순박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고 돌이켰다.
더불어 설경구는 삼례나라슈퍼 사건의 오심 피해자들은 물론, 진범도 만났다고 전하면서 "기분이 되게 이상하더라. 조금 희한한 경험을 했다. 진범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결정적인 증언을 해 준 게 맞는데 기분이 묘하더라"라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줬던 분들도 만났다는 설경구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비슷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웠다"며 "소년들을 성장시켜줘서 고맙다고. 실제로는 못 그랬다더라. 컸는데도 트라우마 때문에 그 시대에 멈춰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를 내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하는데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제목이 '소년들'이잖아요. 성장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겪어서 자신의 감정 표현도 못 하고 바로잡으려는 말도 못 했던 소년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잘못된 걸 바로잡는데도 용기를 내야 하는 세상에서 '이 소년들이 목소리를 낸다'가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한편, '소년들'은 오는 11월 1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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