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 실명에 이상행동 보여도... 체험에 동원되는 승마장 말들

고은경 2023. 10. 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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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보고서 발표
제주지역 한 승마장에서 한쪽 눈을 거의 뜨지 못하는 말이 체험에 동원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한쪽 눈을 실명하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는 말들도 별다른 제재 없이 승마 체험에 동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마방의 90% 이상이 깔짚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등 사육환경이 열악하지만 이를 규제할 법령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부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는 2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는 경기와 제주 지역 승마체험시설 48곳을 방문해 시설 현황과 말 사육환경, 말 건강상태 등을 조사한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기준 국내 승마 시설은 총 488개소로, 농어촌형 승마시설 273개소(55.9%), 체육시설 승마장 137개소(28.1%), 기타 승마시설 78개소(16.0%)로 집계됐다.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생산업 등을 겸하는 경우로 체육시설 승마장보다 신고나 관리조건 등이 다소 느슨하며, 기타 승마시설은 승마시설업이 아닌 사업자로 등록된 승마시설 또는 불명확한 승마시설을 뜻한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108개소(22.1%)로 가장 많았고 제주 75개소(15.4%), 경북 72개소(14.8%), 경남 45개소(9.2%)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이 가운데 승마장 시설이 가장 많은 경기와 관광지로 활성화된 제주지역을 선정해 조사했다.


안과질환·부분탈모에 이상행동까지

이혜원 한국동물복지연구소장이 2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국내 승마장 체험시설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말들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0곳 중 7곳에서 마르거나 비만으로 적정 체중에서 벗어나는 개체가 확인됐다. 경기에서는 총 28개소 중 22개소(78.6%), 제주에서는 총 20개소 중 14개소(70.0%)에 달했다.

말들에게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병변이 관찰된 곳 역시 과반이 넘었다. 종류는 상처 및 흉터, 부분탈모, 안과질환, 비출혈 등 다양했다. 말 건강 관리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발굽 문제 역시 경기 5곳, 제주 4곳에서 관찰됐다. 특히 한쪽 눈을 아예 뜨지 못하거나 안과질환으로 시력에 문제가 있고 코에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에도 기승을 준비하는 등 모두 승마 체험에 이용되고 있었다는 게 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엄청 마른 상태의 말(왼쪽)과 발굽 관리를 하지 않아 발굽이 갈라진 상태. 동물자유연대 제공

이상행동을 보이는 개체도 다수 있었다. 경기 8곳, 제주 5곳의 업체에서 여물통을 물고 공기흡입을 동시에 하는 끙끙이 버릇, 사물 핥기, 몸 흔들기, 몸 계속 비비기, 꼬리 세게 휘두르기 등을 보이는 말들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이런 비정상적 행동의 원인에 대해 "너무 좁은 실내 공간에서 사육하는 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충분한 생활공간이 마련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이게 쌓여 결국 비정상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 관리 소홀 및 열악한 환경도 지적됐다. 90% 이상의 마방에서 깔짚이 제공되지 않거나 일부에게만 제공됐으며, 깔짚을 충분한 수준으로 제공하는 업체는 경기 2개소, 제주 1개소에 불과했다. 또 실외 마사가 있는 승마장에서는 말을 결박해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곳도 다수였는데, 제주 방목지의 경우 관광 승마 체험을 위해 말을 결박한 채 대기시키고 있는 업체가 19개소 중 11개소(57.9%)에 달했다.


말 복지 관련 법안 마련하고 퇴역 경주마부터 관리해야

실내 마사에 오물이 쌓여 있는 모습(왼쪽)과 깔짚이 깔리지 않은 마방. 동물자유연대 제공

문제는 말 사육환경이나 말 관리와 관련한 법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말 산업 관련법인 말산업육성법, 한국마사회법에도 말의 보호나 복지 관련 내용은 빠져 있고, 동물보호법에도 별도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만큼 이와 관련한 법 조항을 신설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연구소는 또 △말 등록 의무화 △승마 관련 영업 구분에 대한 지침 마련 △체육시설과 농어촌형 승마시설로 분리된 승마장 관리의 일원화 △종사자 의무교육 시스템 구축 △말 학대 대응지침 마련 등을 요구했다.

승마장에 있는 대부분의 말이 퇴역 경주마인 만큼 퇴역 경주마부터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발표회에 참석한 김정현 대한재활승마협회 이사는 "말은 5세가 되어야 성체가 되는데, 국내 경마에서는 청소년기인 3~5세에 은퇴하는 비정상적 구조로 되어 있다"며 "경마에 소질 있는 경우는 소수인데 이를 위해 너무 많은 경주마가 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해외의 경우 승용마, 경주마 등 역할이 다르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다 퇴역 경주마가 맡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여물통을 씹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이는 말. 동물자유연대 제공

현장조사를 진행한 이혜원 한국동물복지연구소장은 "전수조사를 통해 전국 승마체험시설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동물 복지를 고려한 방향으로 말 산업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말에 관해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학대 상황에 대응하는 한편 나아가 학대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현재 말산업육성법은 말의 복지나 사육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주마의 번식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며 "앞으로 번식 제한이나 은퇴 나이 연장 등 말 복지 증진을 위해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는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https://www.animals.or.kr/report/print/65099)를 통해 내려받을 수 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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