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동성애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에 합헌결정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군인 등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강간이나 강제추행 뿐만 아닌 '동성 간의 성적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았다. 대표적인 '차별법안'으로 꼽혀온 해당 조항이 합헌으로 인정되면서 시민사회에선 "인권후퇴"라는 지적이 나왔다.
헌재는 26일 군형법 92조의6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재판 당사자들은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헌재는 해당 사건은 재판의 전제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군형법92조의6은 합의여부와 상관없이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인권단체 등에 의해 "군대 내 동성애 자체를 범죄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군형법은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이성 간의 성적 행위의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이날 합헌 결정을 내린 다수 재판관은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라 하더라도 근무 장소나 임무 수행 중에 이뤄진다면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지는 국군의 전투력 보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며 "처벌한다고 해도 과도한 제한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이성 간 성적 행위는 허용하면서 남성인 동성 군인에 대해서만 성적 행위를 금지·처벌하는 것이 ‘평등 원칙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성 군인 간의 성적 교섭행위를 방치할 경우 군대의 엄격한 명령체계나 위계질서가 위태로워진다"며 "이성 군인과 달리 동성 군인 간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군형법 조항이 합의 하의 동성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던 이유는 '처벌 대상에 남성과 여성이 모두 포함되는지', '합의에 의한 추행도 처벌하는지' 등의 여부가 모호하게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동성 간이나 이성 간의 행위임을 구분하지 않은 채 "항문성교 등"을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판례에서 이 조항의 해석은 합의 하 행위를 포함한 '남성 간의 성적 행위'로 제한되어 왔다. 2016년 '추행'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사건의 요약 결정문 또한 해당 조항 속 "항문성교"가 "남성 사이의 항문성교를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수 재판관들은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군형법 피적용자는 어떤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며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소수의견도 있었다. 김기영·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군기라는 추상적인 공익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어떠한 강제력도 수반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개인의 내밀한 성적 지향에 심대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라며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원칙·평등원칙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포괄적인 용어만을 사용한다"며 명확성 원칙을 어겼다고도 했다.
해당 조항의 폐지운동을 벌여온 시민사회에서는 헌재의 결정이 "인권후퇴"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보람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군대 내 합의된 동성 간 성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에 대한 법원의 지속적인 지지는 한국 내 평등을 향한 오랜 투쟁에 있어 안타까운 후퇴"라며 "이번 결정은 한국의 LGBTI가 겪고 있는 만연한 편견을 보여주었으며, 정부가 피해를 예방하고, 평등을 보장할 책임이 있음에도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밝혔다.
헌재의 이번 판단은 대법원의 지난 판단과도 배치된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전원합의체 회의에서 군형법 제92조의6과 관련해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루어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 해당 조항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관련기사 ☞ 남성 군인의 동성애는 범죄인가)
당시 대법원은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항문성교 등 동성 간 성관계를 가졌다는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 씨와 B 씨 등에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를 내린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환송 했다. 피고인들이 "영외의 독신자 숙소에서 근무시간 외에 자발적 합의에 따라" 성행위를 했으며, 따라서 피고인들의 행위가 "의사에 반하는 행위인지가 문제되거나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하였다는 다른 사정도 없다"는 이유였다.
장 조사관은 "군형법 제92조의6은 차별을 제도화하고, LGBTI에 대한 제도적 불이익을 강화했으며, 군대 내부와 일상 생활에서 LGBTI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거나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법은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으며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됐어야 했다"라며 "우리는 한국 내 LGBTI가 직면한 만연한 낙인을 종식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에 군형법 제92조의 6을 폐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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