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만든 ‘딸기벽’에 일본인 우르르…석박사 유학생 일본에 눌러앉는다[저출산 0.7의 경고-일본 이민을 보다]
10년 사이 대학원생 30% 증가
중국인 유학생 출시 우덕상씨 취업→창업→정주
금융회사 300명 중 5명 외국인 고용
브라질인 칸자키씨 “딸도 일본 학교 입학 예정”
고도인재 비자 신설 10년만 3만 8000명 획득
[헤럴드경제(지바·하마마쓰)=박지영·안세연 기자]#. 지난 12일 일본 최대 농업 박람회 농업 위크(Week)가 한창인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 전시장. 전시장 한복판 ‘딸기 덩쿨’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수직으로 세운 철제 프레임에 딸기를 감아 덩쿨 식물 재배 효율을 높인 스타트업 마라나타(Maranatha)의 혁신 농법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60여곳이 넘는 기업 관계자가 기술 시찰과 사업 논의를 위해 마라나타의 부스를 찾았다. 농업 위크 ‘핫플레이스’인 마라나타는 중국인 유학생 출신 창업가 우덕상(34)씨와 일본, 말레이시아 직원으로 구성된 다국적 기업이다.
일본이 동남아 글로벌 고급 인재 블랙홀 자리를 노리고 있다. 유학생이 일본에 취업해 살 수 있도록 각종 지원 사업을 늘리고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능력 있는 외국 인재에게는 창업 지원금까지 쥐어주며 일본에 눌러앉을 수 있도록 유혹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 경쟁 시대, 고급 인재인 유학생을 일본의 미래 인재로 포섭시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스타트업 마라나타(Maranatha)를 창업한 우씨는 중국인이다. 2011년 후쿠이 대학교로 1년 유학을 왔던 것이 계기가 돼 12년째 일본에 살고 있다. 잠시 중국에 돌아갔던 그는 ‘일본이 그립다’는 생각에 다시 후쿠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기계공학 전공을 살려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의 자동차 회사 스즈키(SUZUKI) 취업해 5년 동안 신차 개발 부서에서 일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2020년 사업가로 변신, 바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우씨의 창업 소식을 눈여겨 본 것은 다름 아닌 스즈키 야스모토 당시 하마마쓰시 시장이었다. 수직 재배로 길러낸 딸기를 들고 시장실을 찾자 스즈키 시장이 마스크를 벗고 딸기를 한입 베어물었다. 우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고 먹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직접 먹고 ‘맛있네요’라고 말해 감동받았다”고 회상했다.
스즈키 시장은 자신의 SNS에 우씨의 사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씨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신뢰를 쌓는게 아무래도 힘들었다. 그런데 시장이 SNS에 직접 홍보를 해주니 정말 든든했다”고 말했다. 우씨가 시청으로부터 받은 도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시청이 직접 우씨가 받을 수 있는 여러 지원 사업을 소개했다. 기업을 지원하는 산업진흥과에 창업 소식을 알리자 농업 관계부서와 연결해줬다. 우씨는 시의 소개로 200만엔(한화 약 1800만원) 상당의 지원금도 받았다. 필요한 것은 회사 창업 및 운영 방식, 사업 아이템, 사회 환원 방법을 담은 ‘계획서’와 면접이었다. 멘토가 붙어 면접 ‘꿀팁’도 전수했다. 창업 과정에서 마주치는 행정적인 문제를 일대일로 물어볼 수 있어 창업 후 사업을 안착시키는 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우씨처럼 일본에 유학을 왔다 정주하는 외국인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학생지원기구(JASSO)에 따르면 2012년 3만 9641명이었던 일본 내 대학원 유학생 수는 지난해 5만 3122명으로 10년 사이 34% 늘었다. 학부생 대비 대학원생 비중은 같은 기간 56%에서 74%로 상승했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전체 유학생 수가 8만 6878명에서 16만 6892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학부생 대비 대학원생 비중은 49%에서 54%로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유학생의 양적 증가는 달성했지만 정주 가능성이 높은 대학원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질적 성장은 이뤄지지 못한 셈이다.
일본의 기업들도 외국 인재를 적극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모습이다. 유학생이 아니어도 자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전문 기술이 있다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금융 회사에도 취업할 수 있다.
전날인 11일 일본 하마마쓰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브라질인 간자키 요헤이(36)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 기업 취업 만족도에 대해 “주텐 만텐 주 주텐(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답했다. 회사는 1950년대에 설립된 곳으로 현재 임직원 300여명 중 5명이 외국인 직원이다. 간자키 씨의 요청에 따라 회사명을 비실명화하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0년도에 입사한 4년 차 직원 간자키 씨는 영상 촬영·편집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회사에서 새로운 금융상품을 출시하면,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는 업무다. 칸자키 씨가 편집한 영상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회사 공식 SNS에 올라온다. 그가 다루는 프로그램은 프리미어 프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애프터 이펙트, 라이트룸 등으로 편집 기술도 전문가 수준이다. 브라질 대학에서 관련 수업을 들었다.
임금·복리후생 등은 같은 연차, 같은 직무의 일본인과 외국인이 모두 같다. 해당 회사엔 베트남, 인도, 우크라이나 출신 외국인 직원도 있다. 이들은 프로그램 개발, 데이터 분석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간자키씨가 일본 취업을 결심한 건, 할아버지가 일본인이었던 영향이 크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 모두가 일본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일본어를 첨음부터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2019년에 일본으로 이주한 뒤 온라인 강의를 통해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다. 하마마쓰시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일본어 교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당시 간자키씨는 공장에서 근무했던 탓에 시간이 맞지 않았다.
현재 간자키씨는 정주 비자를 이용하고 있다. 정주비자는 취업활동 제한은 없지만 기간갱신이 필요하다. 그는 내년이면 기간 갱신이 필요없는 영주비자(영주권)을 획득할지, 일본으로 귀화할지 선택할 수 있는데 귀화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지금 6살인 딸도 일본 학교에 입학시킬 계획”이라며 “일본에서 지내는 4년 동안 가족이 차별을 겪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인 직장동료들과 사이는 좋냐’고 묻자, 간자키씨는 웃으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본인이 만든 컵케잌 사진이었다. 간자키씨는 “종종 음식을 직접 만들어 동료들과 나눠 먹는다”며 “입사 당시엔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동료들이 ‘넌 할 수 있어’라며 자신을 믿어줘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급 인재 유치 노력은 유학생을 넘어 더욱 확장하고 있다. 2012년 고도인재 포인트제도를 도입해 능력과 자질을 갖춘 외국인이 일본에 사실상 영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학력, 연봉, 연구실적 등 항목에 따라 포인트를 설정하고 70점을 넘으면 고도전문직 1호 재류 자격을 소지할 수 있다. 최대 5년의 체류 기간을 부여할 뿐 아니라 배우자 또한 일본에서 취업할 수 있게 해 가족 단위 정착을 도모했다. 일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부모도 일본 체류가 가능하다. 고도전문직 1호 재류 자격을 소지하고 3년 이상 거주하면 고도전문직 2호로 전환할 수 있다. 고도전문직 2호는 재류기간이 무기한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매년 20% 이상 늘어 지난해 기준 3만 8014명의 외국인이 고도인재 비자를 획득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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