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유학생이 2주만에 디지털 전환”…일본 기업 모여 ‘외국인재’ 회사 만들었다[저출산 0.7의 경고-일본 이민을 보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지역 경제 침체
인재 유출로 중소기업 인력난 심화
외국인 유학생 끌어들여 핵심 인재로
기업·외국인 근로자 지원하는 회사도 설립
금융, 의료, 교육 다방면 특별 혜택
시내 외국인 2만→3만명 급증
[헤럴드경제(시즈오카현)=박지영·안세연 기자]“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가네코 카즈히로 하마마쓰시(市) 경제동우회 사무국장은 “기업들이 외국 인재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런 말로 운을 뗐다. 소파에 기대있던 몸도 일으켜 세웠다. 경제동우회는 경제단체연합회, 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일본 3대 경제단체로 불린다.
가네코 사무국장의 말을 경청하던 통역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나루호도(그렇군요)”, “스바라시데스네(훌륭하네요).” 연신 감탄사도 튀어나왔다.
2년 전 쯤의 일이다. 자동차의 기본 구조인 차체를 만드는 한 회사가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유학생을 인턴으로 뽑았다. 졸업을 앞두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처해 있던 학생이었다. 그는 부족한 일본어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회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절, 날씨, 풍향 등에 따른 공정 불량률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제안한 내용이었다.
가네코 국장은 “사장은 ‘내가 10년 동안 일본 직원들한테 요구한 내용을 유학생 인턴이 2주만에 해냈다’고 즐거워했다. 겨우 2주만에 잠자던 기업을 DX(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 해버린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인턴은 곧바로 정직원이 됐고, 회사는 매년 외국인 채용을 늘렸다. 지금은 5명의 외국인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9일 헤럴드경제가 일본 시즈오카현 서부에 위치한 인구 80만명의 공업도시 하마마쓰를 찾았다. 야마하(YAMAHA), 가와이(KAWAI) 등 피아노 제조 기업의 근거지로 ‘악기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하마마쓰에 새로운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브라질, 페루 등 일본계 남미인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시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배경에는 고급 이공계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뭉친 지역 기업이 있다.
하마마쓰가 처음부터 ‘열린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1990년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입관법) 개정으로 일본계 남미인이 하마마쓰로 유입됐다. 브라질, 페루 등 남미를 중심으로 외국 국적을 가진 일본계 2세들이다. 3만명이나 되는 많은 수였지만 대부분 공장에서 일하는 저숙련 근로자들이었다.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었다. 관할 현(県)인 시즈오카현의 대학은 물론 하마마쓰시 내 대학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을 적극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계기는 2008년 리먼 사태였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증가로 갑작스러운 ‘엔고’ 현상이 발생하면서 일본 수출 기업 대부분이 타격을 입었다. 공업도시 하마마쓰는 충격이 더 컸다. 2007년 3조엔(한화 27조원)이 넘었던 하마마쓰시 제조품 출하액은 2009년 2조엔(18조원)대로 곤두박질쳤다(일본 공업통계조사 참조).
오토바이 제조 회사 스즈키(SUZUKI), 야마하 발동기, 악기 제조 기업 가와이 등 굵직한 기업의 공장이 해외로 이전했다. 연관된 소형 부품 기업들도 하마마쓰시를 떠났다. 1만명 가까운 외국인이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경기 침체 →공장 철수→ 지역 경제 악화→인력 유출→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화했다.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위기 의식이 번졌다. 하마마쓰 경제동우회는 2019년 9월 ‘하마마쓰 고도 외국 인재 고용 취업 촉진 연구회’가 만들었다. 주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우수한 외국 인재가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시로 끌어들이자는 취지였다. 가네코 사무국장은 “외국인재 유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경제동우회의 연구는 사업으로 이어졌다. 2020년 유한책임사업조합(LLP)라는 독특한 형태의 회사 ‘이코몬즈(e-commons)’가 설립됐다. LPP란 사업 기한을 정하고 만드는 특수 목적 합작회사다. 이코몬즈는 외국인 채용을 원하는 기업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마마쓰 시의 취업 지원, 금융, 의료, 일본어·문화 교육, 행정사법인, 자동차 학교, 커뮤니티 서비스 등 각계 각층의 기업 8곳이 함께 운영 중이다.
미츠이 이쿠미 이코몬즈 대표는 “이코몬즈는 외국인 근로자, 기업과 ‘동행’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코몬즈의 이름 뜻 또한 경제 공동체(economic community)다. 인력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외국인 근로자가 기업에 잘 적응하고 나아가 일본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것이 목표다. 미츠이 대표가 생각하는 이코몬즈는 기업의 ‘서무’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필요한 복리후생을 조합 차원에서 제공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 근로자가 고급 일본어 학습을 원하면 일본어 학원을 소개해준다. 자동차가 필요한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매월 5000엔을 받고 차를 빌려준다. 집을 빌리기 위해 돈이 필요하면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내 갚는 조건으로 대출을 해준다. 얼마 전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모아 바비큐 파티도 벌였다. 가족 방문 시 통역 서비스까지 마련했다. 모두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 서비스’다. 서비스는 조합 참여 기업이 제공한다.
기업의 노력은 외국인 근로자 증가로 이어졌다. 2010년대 중반 2만명 초반대까지 떨어졌던 시내 외국인 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뚫고 반등하기 시작, 지난 4월 기준 2만 7036명까지 늘었다. 시 전체 인구 78만9822명의 3.4%로 일본 전체 외국인 비중(2.4%)을 크게 웃돈다. 이 중 유학생(790명), 기술·인문·지식·국제(1407명) 등 고급 인재는 2304명으로, 저·중숙련 노동자의 재류자격인 기능실승생과 특정기능1호 외국인 2944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에 본사를 둔 한 자동차 부품 회사는 전체 직원 152명 중 68명이 외국 국적이다. 기술 개발, ICT 시스템, 사업 기획, 영업, 법무 등 비제조 부문에서만 43명의 외국인재가 근무하고 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이란, 페루 등 국적도 다양하다.
이코몬즈는 2025년 3월 사업 기한 만료를 앞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법인 형태로 세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업을 종료하지 않고 확장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츠이 대표는 “외국 인재가 일본에 정착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족이 생긴다면 인구는 자연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하마마쓰의 목적 역시 정주 인구를 늘리는 것”이라며 “우리는 외국인 근로자가 하마마쓰의 ‘시민’이 돼 주기를 원한다”고 힘줘 말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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