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朴 손 맞잡고 ‘통합’ 메시지…‘보수 통합’인가 ‘국민 통합’인가
총선 5개월 앞두고 지지율 만회 염두
TK 지역 지지층 이탈 추세 차단 뜻도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해 보수층에게 ‘통합’ 신호를 보냈다. 전통적 보수층 지지가 두터운 두 전직 대통령과의 접점을 부각하며 보수 결집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민생·소통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 행보의 방점이 ‘보수 통합’에 찍히면서 ‘국민 통합’ 신호는 퇴색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을 두고 ‘처음’이라는 수식이 거듭 등장했다. ‘현직 대통령 최초 참석’ ‘취임식 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 ‘중동 순방 귀국 후 첫 일정’ 등 ‘최초’ 의미가 부여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을 계기로 취임식 이후 대면 만남이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소통하며 보수층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합 메시지를 발신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 나라의 위대한 지도자” “자랑스러운 지도자”로 호명했다. 산업화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루어내신” 것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면 된다’ 정신이 “위대한 국민으로 단합”시켰다며 이를 다시 새기자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거듭 손을 맞잡고 묘소를 함께 참배하며 가깝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현직 보수 진영 대통령들이 거듭 ‘정치적 화해’ 장면을 내보이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두 사람은 윤 대통령이 검찰 재직 시절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팀장과 피의자로 악연이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4월 대구 달성군의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50분간 회동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면목이 없습니다. 늘 죄송했습니다”라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 달 뒤 열린 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고, 지난해 윤 대통령 부친상 때는 건강 문제를 들어 전화로 조문했다.
대통령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이번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국민 통합” 행보라며 정치적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 추도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 유족 대표 인사에 국민이 단합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국민 통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보수 지지층 이탈이 두드러진 현실을 고려하면 정치적 셈법이 깔린 행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내년 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저조한 상태여서 여권의 ‘보수 결집’ 필요성은 커졌다. 지난 2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4.2%)에서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을 이끈 것도 전통적 지지층이었다. 지역별로 대구·경북(TK) 지지율이 전주보다 13%포인트 낮아져(45%) 하락폭이 가장 컸다. 연령별로는 전통적 여당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70대 이상 지지율이 7%포인트 하락했고,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7%포인트 하락이 나타났다. 추도식 참석은 두 부녀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TK 지역 민심에 소구하면서 지지층 이탈 추세를 제어하려는 뜻이 담긴 행보로 풀이된다.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혁신위원회를 띄운 여당 지도부를 한 자리에 모아 통합 신호를 보내려 한 것으로도 읽힌다. 윤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이날 추도식은 김대기 비서실장을 포함한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이 대거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에서도 김기현 대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비롯해 주요 당직자들이 총출동했다.
향후 관건은 윤 대통령이 보낸 보수 통합 신호가 여야 협치와 국민 통합 방향으로 확대해 나가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보궐선거 참패 이후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주문하며 민생·소통 강화를 강조해왔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김승희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거취 논란을 빠르게 정리한데도 이같은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여권 내 전열 정비, 보수층 내부 소통 강화 속도전에 비해 ‘여야 협치’나 ‘국민 통합’ 노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와 관련한 윤 대통령 행보, 오는 31일로 예정된 시정연설 등이 국민 통합 의지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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