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불친절하면 어떤가···이토록 아름다운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리뷰]
‘이세계’로 간 소년 이야기
1930년대 말 어느 날 밤, 일본 도쿄 거리에 공습 경보가 울린다. 병원에 큰불이 나면서 소년 ‘마히토’(산토키 소마)는 어머니를 잃는다. 이듬해 마히토는 재혼한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의 고향인 시골 마을로 이사 간다. 새로 살게 된 저택엔 왠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저택 옆에는 사람들이 꺼리는 오래된 탑이 서 있다. 푸른 깃털의 왜가리는 소년 곁을 맴돈다.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25일 베일을 벗었다. 벌써 4번째 은퇴를 번복한 그가 <바람이 분다> (2013)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개봉 첫날에만 25만명이 봤다.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팔순의 거장이 창조한 세계가 더없이 아름다우며 그의 예술 세계 집대성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야기는 마히토가 “엄마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왜가리를 따라 ‘아래쪽 세상’이라 불리는 이세계(異世界)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세계는 인간 아닌 존재들로 가득하다. 마히토는 이곳에서 조력자를 만나 도움을 받고, 위험에 빠지기도 하면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해나간다. 어린 주인공이 특정한 공간을 통해 인간 아닌 존재들이 사는 이세계로 가게 된다는 점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떠올리게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속 세계는 아름답다. 소년의 성장과 세계의 평화,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 여러 메시지가 지브리 특유의 아름다운 작화와 어우러진다. 픽사, 디즈니와 확연히 구별되는 지브리의 고유한 색깔은 향수를 부른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존재인 ‘와라와라’ 같은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관객의 마음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가장 많이 반영된 작품이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 감독 역시 마히토처럼 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했고, 군수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아래서 유복하게 자랐다. 영화와 같은 제목으로, 극 중 마히토가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책(1937) 역시 감독이 어린 시절 읽은 책이다. 10대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이 책은 군국·국수주의가 발호하던 시기 청소년에게 ‘스스로 자신을 결정하는 힘’을 강조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만화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때이자 아베 정권하에서 ‘보통국가화’ 움직임이 본격화한 2017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작업에 돌입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완벽을 기했다. 당초 3년이었던 예상 제작 기간은 7년이 됐다. 제작비는 지브리 스튜디오 역대 최고다. 영화는 지난 7월 일본 개봉 당시 마케팅을 일절 하지 않아 화제가 됐는데,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마케팅 비용을 제작에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 직후 엇갈린 평가가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다. 상징과 은유가 많고 군데군데 설명을 건너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역시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불친절하다.
이야기 전개는 은유적일지라도 거장의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아랫쪽 세계에서 돌을 쌓아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마히토의 증조할아버지는 말한다. “너만의 탑을 쌓아라. 풍요롭고 평화로운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라.” 생의 끝에 다다른 거장의 질문이자 호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지난 9월 미야자키 감독이 최근 신작 작업에 들어갔다며 더 이상의 은퇴 선언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은퇴를 몇 번 번복한들 민망함은 거장의 몫. 그의 독창적인 세계와 다시 한 번 마주할 수만 있다면 관객에겐 그저 행운이다.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23분.
https://www.khan.co.kr/world/japan/article/201712051401001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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