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중심 경영에 힘 실은 이재용…선임 사외이사제 도입
대표이사가 의장 맡았을 때
선임 사외이사로 견제 가능
"외부 질책·조언 경청하겠다"
삼성SDI·SDS 우선 도입 결정
향후 타 계열사로 확대 검토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
지난해 10월 27일 계열사 부당 합병·회계 부정 의혹 사건 재판을 마치고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취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하며 '신뢰'를 강조했다. 이날 오전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 회장의 취임을 결정했고, 별도의 취임식이나 취임사는 없었다.
취임 1년을 맞는 이 회장이 '투명경영'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섰다. 26일 삼성은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을 위해 '선임(先任)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이사회 중심 경영에 대한 이 회장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 본인도 지난해 회장에 취임할 당시 별도의 승인 절차가 필요 없었음에도 이사회 논의 절차를 거쳤다. 삼성 관계자는 "외부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겠다는 이 회장 의지에 따라 내부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SDI와 삼성SDS는 이날 개최한 이사회에서 선임 사외이사 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삼성SDI는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가, 삼성SDS는 신현한 연세대 교수가 선임 사외이사를 맡는다. 두 이사는 모두 2020년 3월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현재 삼성SDI와 삼성SDS 이사회 의장은 각각 전영현 부회장, 황성우 사장이 맡고 있다.
선임 사외이사 제도는 대표이사나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 사외이사를 선출해 적절한 균형과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다는 취지다. 선임 사외이사는 '사외이사회'를 소집하고 회의를 주재할 권한을 가지며, 경영진에게 주요 현안 관련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 의사회 의장·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소통을 위한 중재 역할도 담당한다.
삼성SDI, 삼성SDS 외에 현재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지 않은 삼성 계열사들도 선임 사외이사 제도 도입을 검토할 방침이다.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카드·삼성자산운용·삼성물산 8개사는 이미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어 제도 도입 대상은 아니다. 삼성 관계자는 "선임 사외이사 제도 도입은 지배구조 체제를 개편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와의 소통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지난 1년간 경영 시스템에 대한 변화뿐 아니라 본인의 '플래그십' 사업을 키우는 데 매진했다. 삼성을 진정한 초일류기업으로 키워 '승어부(勝於父)'를 이뤄내겠다는 포부가 그의 궤적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입해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인 710만㎡(약 215만평)의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은 삼성의 '반도체 초격차'를 현실로 이끌 과감한 결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완전자율주행 반도체 개발을 논의하는 등 새로운 시장 선점에도 나서고 있다. 바이오 분야는 이 회장이 나선 도전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힌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미국 출장길에서 J&J·BMS·바이오젠·오가논·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 등 글로벌 제약사들과 연쇄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6G(6세대) 이동통신, 전고체 배터리 등 '세상에 없던 기술'에 대한 도전도 늦추지 않고 있다. 그가 진두지휘했던 5G 사업은 최근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에서 잇달아 통신장비 수주에 성공하며 결실을 맺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삼성SDI 수원사업장을 방문해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사회책임을 강조하는 '미래 동행' 행보도 꾸준히 보여왔다. 지난해 10월 28일 회장 취임 후 첫 행선지로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협력회사 '디케이(DK)'를 방문하고, 다음달인 11월에는 삼성 스마트공장 지원을 받은 부산 소재 중소기업 '동아플레이팅'을 찾았다.
지난 1년간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한 이 회장이지만 과제는 남아 있다. 우선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혐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으로 매주 1~2회씩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올해 안에 재판 1심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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