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포스트 오일, 지하자원서 지상자원 시대로

2023. 10. 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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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3개국 탈탄소 시대 준비
한국, 핵심 파트너로 떠올라
尹대통령 'CF연합'도 긍정적
탈석탄·재생에너지 실천으로
에너지 선진국 주도권 잡아야

"다음번에는 사우디에서 생산하는 현대 전기차를 함께 타기를 바랍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24일(현지시간) 빈살만 왕세자가 숙소를 깜짝 방문해 윤 대통령을 태우고 직접 차를 몰아 행사장까지 가는 길에 했다는 이 말에 감회가 깊었습니다.

1970년대 초 오일 쇼크로 한국 경제가 뿌리째 휘청거릴 때 현대건설을 비롯해 우리 기업들이 오일 머니를 벌겠다고 사우디로 건너가 밤새워 불을 밝혀 일했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 외삼촌도 그중 한 분이셨습니다. 돈과 시간을 아낀다며 몇 년간 공사 현장에만 머물렀던 외삼촌이 몰라볼 만큼 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귀국해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포스트오일(Post Oil), 2030 그린 사우디(Green Saudi)'를 진두지휘하는 빈살만 왕세자가 지목하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당시 하청 국가에 가까웠던 한국이 이제는 전기차를 비롯해 원전과 청정수소, 스마트 시티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기술과 산업, 인프라를 총망라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된 것입니다. 사우디뿐 아니라 UAE, 카타르 중동 3국은 석유와 가스로 축적한 막대한 국부를 Post Oil 즉, 탈탄소 시대 준비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녹색 넥타이까지 맨 윤 대통령의 전방위 외교에 힘입어 한국이 이들 3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금액은 100조원이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이 중동 빅3를 사로잡은 비결은 뭘까요.

지난 연말 이집트 기후변화총회장에서 만난 사우디의 압둘아지즈 에너지부 장관(빈살만 왕세자의 형)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대건설 시절부터 알게 된 한국은 중동의 정세가 불안해져도 현장을 떠나지 않더군요. 더구나 기술도 뛰어나고 일을 아주 빨리 잘합니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에서 세계 최대의 청정수소 수출국으로 변모할 텐데 한국은 모든 면에서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겁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갈등을 극복할 두 가지 조건, 즉 '믿을 수 있는 파트너십(reliable partnership)'과 '대체불가의 역량(indispensable capability)'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 '민첩성(agility)'까지 가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윤 대통령이 이번 유엔 총회에서 제안한 '무탄소 연합(Carbon Free Alliance)' 구상에 대한 반응도 좋습니다.

사우디는 2030 그린 사우디 비전과 더불어 한국의 CF 연합을 양국의 미래를 함께 열어 갈 목표로 삼았습니다. 제28차 기후변화총회(COP28)를 개최하는 UAE의 경우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넷제로 원전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국의 CF 연합을 환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필자는 유엔 총회 기간 중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열린 비공식 고위급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미국, 영국 등 다수 국가의 지지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탄소중립을 구현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원전, 수소와 같은 무탄소 에너지를 최대한 함께 키우자는 한국의 제안이 자국의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별도로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제10회 한·중·일 협력 대화에서도 일본 측은 "CF 연합에 120% 찬성한다", 중국 측은 "모든 무탄소 옵션을 열어두자는 것에 찬성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석유, 가스와 같은 지하자원이 없어 몸과 머리, 끈기로 버텨야 했던 한국.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재생에너지와 수소 같은 지상 자원이 떠오르는 지금, 한국은 클래스가 다른 에너지 선진국 퍼스트 코리아(First Korea)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 공동위원장, KAIST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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