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만추문예에 도착한 2000편의 열망

전지현 기자(code@mk.co.kr) 2023. 10. 26. 17: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40세 이상에 등단 기회
중장년 문학도 대거 몰려
글로써 세상과 교감하는
제2인생 도전의지 강렬해

'그 미친 전쟁이 당장 덜미를 잡아올 듯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 눈먼 악마를 안 만날 수만 있다면.'

박완서 선생의 첫 장편소설 '나목'(1970년)의 문장이다. 1남4녀를 키우는 40세 전업주부였던 그는 전쟁의 상흔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1950년 6월 25일 이후 그의 삶은 거친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다.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8군 초상화부에서 일해야 했으며, 숙부와 오빠가 목숨을 잃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문자로 살아 숨 쉬게 하고 싶어 소설을 썼다.

생전의 그는 "삶의 곡절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글로 쓰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고통의 시기를 살아냈다"고 고백했다. 글을 통해 과거를 치유한 후 진실한 문장으로 가부장제와 여권운동의 대립, 중산층의 허위의식 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등을 휩쓸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창작하면서 40여 년간 단편 80편과 장편 15편, 동화, 산문집, 콩트 등 다양한 분야 작품을 남겼다. 남들은 도전을 멈추는 중년에 문단을 두드렸고 결국 한국 문학의 '거목(巨木)'이 된 것이다.

본지와 교보문고는 제2의 박완서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문인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만추문예(晩秋文藝)'를 올해 처음 시작했다. 모두 늦었다고 생각할 때 제2 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드리고 싶어 응모 자격을 만 40세 이상으로 제한했다. 젊은 문학도들의 격전장인 '신춘문예(新春文藝)'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지난 8월 말 만추문예 공고가 나간 후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대구에 살고 있다는 노년의 독자는 떨리는 음성으로 "당선되면 정말 소설가가 될 수 있느냐"며 설렘을 드러내기도 했다. 펜 끝을 벼리던 중장년 문학도들의 열정이 불타올라 마감 기한인 지난 15일까지 시·소설 총 2000편이 응모됐다.

지난 두 달간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카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만추문예로 들썩이더니 기대 이상의 응모작 수가 접수됐다. 한 50대 주부는 블로그에 "만 40세 이상만 응모할 수 있다니 그냥 좋았다. 사회에서는 점점 밀려나기 시작하는 나이일 수 있지만 누구보다 멋진 도전이 아닐까 싶다"면서 "내 진솔한 얘기로 누군가가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쓰며 만추문예를 반겼다.

"소설이 무슨 거창한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힌 제 자신의 울음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 박완서 선생처럼 아픈 과거와 마주하는 응모자도 있었다. 그는 외환위기(IMF) 때 실직으로 가족을 위태롭게 한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되돌아보면서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저 한 남자가 살아온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버지도 처음 태어날 때부터 내 아버지로 태어난 게 아니다. 많은 실수와 시련을 겪고 버텨내며 살아오셨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탈고했다"는 소회를 블로그에 남겼다.

책이 영상에 압도당한 시대에 왜 이렇게 문학에 대한 열망이 강할까. 글쓰기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육신은 소멸해도 문장은 남는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11월 중순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당선자들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 같은 소설가와 시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쓴 글들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거울인 동시에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거울이 있어서 나를 가다듬을 수 있으니 다행스럽고, 글을 쓸 수 있는 한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라던 박완서 선생처럼.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