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분만’ 기피는 현실…"산파 불러 애 낳는 상황 올지 몰라”
(지디넷코리아=조민규 기자)“의사 부족은 말이 안 된다. 필수의료 인력이 없는 것이다. 내가 정책 입안자라면 원가 이하의 필수의료 수가를 정상화시켔다”
위기의 산부인과, 더 나아가 필수의료가 살아나기 위한 선결과제로 제시한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이하 ‘직선제 산과개원의’) 초대 회장의 말이다.
직선제 산과개원의는 산부인과(이하 산과) 붕괴 이유에 대해 저수가와 안전하지 않은 진료환경,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워라벨 붕괴를 지적했다.
광주 지역에서 25년간 분만을 책임져온 문화여성병원이 지난 8월30일을 경영악화로 문을 닫는 등 지역 분만병원이 빠르게 줄고 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2020년 517개소에서 2022년 470개소로 약 9% 감소했고, 10년 전인 2012년(739개소)과 비교하면 36.4%가 감소했다.
특히 산과는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시군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50곳에 달한다. 전국 공공의료기관 중 7개소도 전문의가 없어 산과와 소아과 진료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분만 전문의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규 산과 전문의는 2004년 259명에서 2023년 102명으로 절반 넘게 줄었는데 이 중 남성 산과 전문의의 경우 7명(2004년 171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직선제 산과개원의 박혜성 수석부회장은 “나도 2년 전에 분만을 접었다. 내 애들이 의대 간다면 산과는 가지 말라고 할 것 같다”라며 “16억원, 매달 270만원 배상하는 상황에 어떻게 분만을 할 수 있다. 내가 감옥 가면 가족과 병원 직원은 누가 책임지나”라며 의료사고 시 정부의 대책을 주문했다.
우선 수가의 경우 초산 제왕절개 분만비의 경우 약 250만원 수준인데 반해, 원가보존율은 2017년 64.5%, 2020년 53.7%, 2021년 52.9%로 2건의 제왕절개를 해야 원가 보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산과 개원의 설명이다.
여기에 의료사고로 인해 잇따른 형사‧민사 소송이 제기되면서 10억원 이상의 소송(배상)비용 부담도 큰 상황이다. 산과 개원의가 산부인과 4년차 전공의 82명과 전임의 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7%는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 중 79%가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답할만큼 의료사고 부담이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과 개원의에 따르면 하루 평균 2명의 의사가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고 있는데 이로 인한 형사처벌도 2010년부터 2020년까지 354명이 1심 재판을 받아 67.5%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분만사고 소송에서는 1심 결과가 나오는 데 평균 4년, 최종심 판결까지 7~10년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어 비용뿐만 아니라 신체‧정신적 고통도 큰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손문성 부회장은 “이 시간에도 산모를 살리려 의사들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 20년 뒤에는 분만 의사는 없을 것이다. 현재도 시골에 마취의사가 없어 분만을 접는 병원이 많고, 민형사 소송과 악성민원 등에 접는다”라며 “의료사고 판결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최근 한 소송의 판결문을 보면 왜 빨리 제왕절개를 하지 않았냐가 발단이다. 자연분만 시도하다 상태가 나빠져 제왕절개를 했는데 나는 더 빨리 결정했을까 생각이 든다. 일부는 단체행동하자는 이야기도 했는데 2심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면 분만의사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자연분만을 포기한다는 성명을 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판결에 대해 허탈해 했다.
삶의 질 역시 낮다. 산과 환자들이 여성 전문의 진료를 선호하면서 신규 남자 전문의는 2007년 91명에서 2023년 7명으로 급감했다. 뿐만 아니라 분만 특성상 24시간이 응급으로 1인 당 당직 횟수는 증가해 근무여건은 더욱 열악해지고, 여의사들도 분만실 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
김재유 회장은 “해외에서도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의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하지만 이 거위의 배를 반쯤 갈랐다”며 “분만수가는 OECD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민형사상 배상은 최근 10억원대 중반으로 늘었다. 이러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필수의료, 산과는 살아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사의 경우 과실이 재판부의 주관에 따라 결정된다. 법적 효력은 없겠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사고) 가이드라인을 정ㅇ해 공개한다면 환자들에게도 도움 되고, 재판이나 소송의 횟수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필수의료 살리기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러한 상황에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정원을 확대한다고 하는데 필수의료가 어떻게 살아날지는 말하지 않는다. 건보공단 이사장은 ‘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필수의료가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고 국민의 보험지출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필수의료 살리는 방법으로 우리가 이야기한 수가 현실화, 의료사고 특례법 등이 도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민규 기자(kio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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